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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어떻게 대통령께 물어봅니까”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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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받은 시간도 확인 않은 채

“부속실 보고=대통령 보고” 결론

“계속 끊임없이 보고” 국회 답변

청와대 경직성 속에 진실 덮였다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 1심 선고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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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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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 보기만 하겠다고!” “김기춘 XXX 나와!”

지난주 수요일(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 412호 법정. 법정 밖에서 고함과 외침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재판장은 판결을 멈추고 법정 경위에 물었다. “해결이 안 돼요?”

법정에선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방청권을 받지 못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들여보내 달라”며 문을 두드렸다. 형사합의30부 재판장인 권희 부장판사는 법정 출입을 통제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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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는 김기춘 전 실장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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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1번’ 방청권 줄을 목에 걸고 법정에 앉아 있었다. ‘선착순 방청권 배부’를 전날 알았기 때문이었다. 피고인석에는 푸른색 수의(囚衣)를 입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었다. 그 옆으로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윤전추 전 부속비서관실 행정관이 나란히 앉았다. 김장수·김관진 두 사람이 꼿꼿이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가운데 김기춘 전 실장은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대형 선박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대통령은 오전에 국가안보실장 등에게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만 한 뒤 늦은 오후에 중대본에 방문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재판장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의 청와대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고 있었다. 야당과 언론은 청와대의 부실·늑장 대응을 비판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청와대로선 참사 당일의 대통령 보고·지시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청와대는 5월 중순 실무자 TF를 만들어 국회 대비 질의·응답자료 초안을 작성한 뒤 6월 하순부터 김기춘 비서실장이 참석하는 ‘검독회’를 14차례 진행했다. 김 실장은 답변 내용이 정리되면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말하는 식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서면 또는 유선으로 하는 것이 더 신속하고 빠르고 효과적일 수가 있습니다. 저희들(비서실)이 계속해서 간단(間斷·잠시 끊어짐)없이 20~30분 단위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2014년 7월 김기춘 실장 국회 답변)

치밀한 검토 끝에 나온 답변이었다. 비서실은 당시 부좌현 의원 질의에도 같은 내용으로 서면 답변했다. 검찰은 이 부분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 전 실장 측은 “비서실에서 11차례에 걸쳐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보고서 이메일을 보내는 등 서면 14회, 유선 7회 보고를 한 만큼 허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허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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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답변은 정권교체 후인 2017년 10월 임종석 비서실장의 ‘세월호 보고 문건’ 공개를 계기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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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답변은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어 대면보고를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무자들이 ‘부속실로 보고’라고 기재했는데, 피고인(김기춘)이 국회 대비 회의에서 ‘부속실에 보고한 것이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과 동일하다’면서 답변서를 정리하도록 지시했다. 피고인은 청와대와 대통령이 더욱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지 못한 사실을 감추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판결문 중)

본관에 근무하며 11차례 이메일을 받았던 정호성 전 비서관이 ‘관저의 대통령에게 즉시 전달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나눠 전달했다’는 재판부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사고 당일 보고를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받아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또 하나, 청와대 대응에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었다. 국회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4월 16일 당일 박 전 대통령이 보고서를 받아본 시간을 물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실무자들은 ‘대통령에게 보고서가 전달된 시간을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으나 당시 청와대 분위기상 이를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판결문 중)

국회 답변 준비를 하면서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보고서를 읽어보신 시간을 확인해서 실제 보고시간을 특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대통령께 물어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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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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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문 한마디에 모든 논의가 멈췄다. 누구도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호성 비서관에게는 왜 묻지 못한 걸까. 당시 청와대 조직이 얼마나 경직돼 있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지금의 청와대 분위기는 어떨까. 재판장이 호명하자 김 전 실장이 일어났다.

“청와대의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피고인이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 있는 점…피고인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 사건 범행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대형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가리는 문제였다. 그 중대한 진실을 감추려 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형량일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행을 한 게 아니다”라는 게 형량을 낮추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조직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 시민들을 속이는 것이 조금은 나은 행동인 걸까.

국가 권력과 시민들 사이에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것도 불법 도청보다 은폐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이번 재판은 공직자들의 진실 의무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이날 김장수·김관진 전 안보실장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김장수 전 실장 무죄는 “당일 ‘오전 10시 15분 통화했다’는 게 허위임을 인식하면서 알려줬다는 혐의에 대해 입증이 부족하고, 알려줄 당시 이미 퇴임해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관진 전 실장의 경우 “안보실에서 위법한 방법으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수정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피고인이 직원들과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법대로 처리해달라고 5년이란 시간을 그 믿음 하나 가지고 싸웠습니다. 법원은 사실을 은폐하고 숨기려고 했던 자들에 대해 근본적 죗값을 묻지 않았습니다.”

■ 해프닝으로 끝난 ‘보고시점 조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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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상황보고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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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된 계기는 2017년 10월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기자회견이었다. “세월호 관련 최초 상황보고서에는 ‘오전 9시 30분’에 보고한 것으로 돼 있었는데 2014년 10월 ‘오전 10시’로 수정됐다(사진). 보고 시점과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이려고 사후에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확인된 사실은 임 전 실장 발표와 달랐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직원은 오전 9시 30분이면 상황보고서 1보(報)가 완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보고시간을 ‘9시 30분’으로 기재했으나 추가 내용을 확인하느라 9시 30분을 넘겨 보고서를 완성했다. 상황보고서 1보는 보고시간을 미처 수정하지 못한 채 관저로 전달됐다.

이후 안보실은 위기관리센터에 설치된 CCTV 녹화 영상을 검토한 끝에 ‘9시 50분’으로 수정했다. 그러다 6월초 해경과의 핫라인 통화 녹취록을 입수해 상황보고서와 비교한 결과 당일 오전 9시 57분 파악한 내용이 1보에 들어가 있었다. 보고시간이 그 이후인 ‘10시’로 수정된 건 그래서였다. 누구의 지시와 제안으로 최초 보고시간을 변경하게 됐는지는 안보실·비서실 직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

임종석 전 실장의 발표는 성급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역시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주먹구구로 보고 업무에 임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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