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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래용 칼럼] 문 정부 3번의 개각···파격·감동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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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다. 물 중에 으뜸은 이른 새벽 처음 길은 우물물이다. 물의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정화수(井華水)다. ‘정화수 떠놓고 빈다’는 말엔 좋은 물을 길으려는 정성과 미래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경향신문

문재인 정부 개각은 지금까지 세 차례 이뤄졌다. 첫 번째 조각은 파격과 참신함으로 호평받았다. 2기와 3기 개각에선 이런 평가를 듣지 못했다. 재미도 감동도 사라졌다. 왜일까. 청와대 사람들은 최선은 다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로 인물난을 든다. 후보감 10명을 접촉하면 6~7명은 처음부터 거부한다고 한다. 어느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는 15번째 후보가 지명됐다. 그도 낙마했다.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는 고위 관계자는 “테이블에 올라온 후보들의 검증자료엔 중대 흠결, 상당 흠결, 일부 흠결이 나눠 적혀 있다. 흠결 없는 사람이 없다. 하도 사람이 없다보니 요즘엔 상당 흠결까지 추천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그만한 나이에 그 정도 기준을 맞춘 사람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인사청문회가 흠집내기, 면박주기로 흐르다보니 자기 관리를 잘한 정치인과 관료, 교수 출신으로 인재풀이 좁아지는 측면도 있다. 8·9 개각은 대부분 관료·교수 출신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는 것 같지 않다. 높아진 검증기준이 아니라 협소한 인사수첩 때문이다. 공의휴는 재상에 취임하자 자기 밭의 아욱을 다 뽑고 부인의 베틀을 불살랐다. 채소장수와 베 짜는 여자는 뭘 먹고 사느냐는 이유에서다. 정자 형제는 흉년이 들면 흰쌀밥을 먹지 않았다. 내 편에서만 찾으니 이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때 얘기다. “청와대 대변인 인선 때 나는 당시 MBC 여성 앵커로 활약 중이던 박영선 기자를 추천했다. 균형감각, 문제의식, 비판정신 등 좋은 이미지를 겸비한 앵커로 판단했다.”(<문재인의 운명>)

문 대통령은 박영선을 눈여겨보았고, 그를 16년 뒤 장관으로 기용했다. 문 대통령은 아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 이미 검증된 인물을 쓴다. 그리고 사람을 쓰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이다.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돌려막기·회전문 인사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부산에 법률사무소를 차린 뒤 사무장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던 여성 변호사는 법제처장을 거쳐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임명됐다.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으로 일했던 조기숙 교수는 <대통령의 협상>이란 책에서 “전문성이나 정치적 소신, 아이디어도 없는데 문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몇 명 보았다”며 “문 대통령은 내용보다 태도가 좋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낯가림이 심한 편이지 않느냐”고 했다.

여권에선 문재인 정부 인사의 우선순위를 놓고 나도는 얘기가 있다. 2012·2017년 대선 캠프에 모두 참여한 사람은 1순위, 2012년 대선에 참여한 사람은 2순위, 2017년 대선에 참여한 사람들은 3순위라는 것이다. 두 번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자리를 꿰찼다. 2012년 대선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2017년 대선에 지각승차한 사람들의 줄은 늘어서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 시절 일했던 행정관은 비서관으로, 비서관은 수석으로, 과장은 청장으로, 국장은 장관으로 승진해 돌아왔다.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을 보는 느낌이다. 여론은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쇄신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 취임 초기 지지율이 치솟던 때 응답자들은 소통과 인사를 긍정평가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지금 조사에서 인사는 긍정평가 10번째 안에도 들지 못한다.

내각은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책신뢰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코드만이 인사의 우선요소가 되어선 곤란하다. 인사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건 국가를 이등분시키는 것과 같다. 한 우물 안에 내 물과 네 물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물은 가를 수 없고, 자국도 없다. 어느 시인은 물과 함께 우물에 휘영청 떠 있는 달도 같이 담아 왔다고 한다. 달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좋은 물을 긷기 위한 정성과 간절함은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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