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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박성진의 군 이야기]무능한 합참 정보본부···북 김정은 선전술에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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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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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1호 사진’은 3S··빠른 전달(스피드·SPEED)·웃는 모습(SMILE)·신호 전달(SIGNAL)

·김일성·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메시지 전달 방식···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감 표현

·북한, 나치 선전술 모방한 ‘화려한 이름·나쁜 이름’ 붙이기 선전술 구사

·북 미사일 발사 장면의 ‘정보 왜곡’ 가능성에 대한 검증 필요

·정부 무대응과 언론 중계는 문제···군 정보 당국 무능이 한몫

김정은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사진·동영상을 이용한 프로파간다에 한국군이 속수무책이다. 조선중앙TV, 노동일보,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1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하에 전날 ‘새 무기 시험사격’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지난달 25일부터 3주 사이에 여섯차례 발사체를 발사한 것이자, 올해 전체로 보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8번째 발사였다.

북한은 이날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며 발사된 미사일이 함경남도 길주군 무수단리 앞바다 ‘알섬’인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의 작은 바위섬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노동신문이 이날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이 발사체의 바위섬의 타격 성공을 확인하고 주먹을 불끈 쥔채 기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진전된 미사일 기술을 과시해 왔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진을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사진 한 장을 TV 화면에 10초 정도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노동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 식이다. 1~2분짜리 동정 보도에 10여 장의 사진이 연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다.ㅗ

■김정은의 ‘3S’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얼굴 사진은 소위 ‘1호 사진’으로 통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1호 사진은 수년 전부터 ‘3S’라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빠른 전달(스피드·SPEED)’ ‘웃는 모습(스마일·SMILE)’ ‘의도된 메시지 노출(SIGNAL)’ 등이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행태는 아버지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 북한 언론매체들은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 사진을 한참 지난 뒤에 공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촬영 날짜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최고사령관 동지 초청행사의 비밀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며 신변안전 문제를 들어 시찰 일정 자체를 보안에 부치는 게 관례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일주일은 물론 한 달이 지난 다음에 군 부대를 다녀간 사실이 북한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흔했다.

김정일 전 위원장 사진은 조작됐거나 변형된 사례도 상당수였다. 군부대 시찰 사진에서는 인민군 장병의 그림자는 비스듬한 반면 김 전 위원장의 사진만 반듯한 사례가 관찰되기도 했다.

이처럼 1호 사진에 시간과 장소가 표기되지 않은 것도 과거 북한의 일반적인 보도 방식이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보 노출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이때문에 서방 정보 당국은 김정일이 나오는 사진의 배경에 나오는 초목 상태 등을 분석해 사진이 찍힌 시기를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등장 이후 북한 매체는 그의 움직임을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보도했다. 심지어 보도가 당일 저녁에 나온 적도 있다. 김정일 시대와 견주면 매우 빠른 전달임을 알 수 있다.

미사일 발사 장면을 바라보며 웃는 김 위원장의 모습도 1호 사진의 상징처럼 됐다. 주먹을 불끈 쥐고 웃는 김 위원장의 사진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웃는 모습은 2년 전부터 두드러졌다. 북한 노동신문은 2017년 8월 23일자 1면에 김 위원장의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사찰 장면 사진을 공개했다. 이때 김 위원장이 웃고 있는 모습 뒤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수중전략탄도탄 북극성-3’이라고 적힌 미사일 설명판(붉은 원)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이 등장하는 1호 사진을 통해 SLBM 발사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한·미 정보당국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김정은의 지하벙커 사진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을 보고받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보고받는 김정은 위원장 뒤로 벽에 걸린 3개의 지도 때문에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사진에서는 ‘남조선 작전지대’ ‘일본 작전지대’ ‘태평양지역 미제 침략군 배치’ 등의 글씨로 북한의 미사일별 작전이 가능한 범위를 표시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역시 북한이 한·미에 보내는 위협 메시지였다. 그러나 북한이 보여준 사진들 가운데 괌 미군기지가 6년 전 찍힌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변변한 위성사진 한장 없는 북의 현실이 노출되는 역효과를 냈다.

북한은 지난달부터 단거리 미사일 전력 ‘3종 세트’를 잇따라 발사하면서 김 위원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웃으면서 자신감을 표출하는 장면을 연이어 내보냈다. 국내용을 벗어나 글로벌 시대 맞춤용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1호 사진도 흔해졌다. 1호 사진은 이미지 기획자들 및 영상 전문가들이 각각 연출과 촬영을 맡아서 주연 배우 ‘김정은’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미사일 발사때에는 ‘자아도취’한 듯 환하게 웃는 김 위원장 뒤에서 관계자들이 양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만세를 외치거나, 격렬한 박수를 치는 모습을 연출한다. 지난 2일 대구경조종방사포 시험사격 때는 이를 지켜보는 김 위원장 책상 위에는 휴대전화와 태블릿PC, 재떨이, 쌍안경, 담뱃갑과 라이터 등이 소품으로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스마트TV도 걸렸다. 북한의 IT 기술 발달을 과시하려는 시도로 정보당국은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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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미디어전략

남한 정보당국은 북한이 내놓는 김 위원장 사진이나 동영상이 노출하고 있는 정보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그 정보가 100% 팩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는 이제 전통적인 전쟁의 의미를 벗어나 ‘제3의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미디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정보 왜곡과 굴절을 통해 한반도 상황을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조작하는 ‘미디어 전쟁’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 위원장 자신이 등장하는 1호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서방에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자유자재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사진 노출 빈도는 그의 아버지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늘었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하루에 많아야 1~2장씩 사진이 배출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20~30장의 사진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유난히 미사일 발사장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것은 군심 다독이기 차원의 ‘사진 정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은의 뒷모습과 하늘로 날아가는 무기들의 화염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TV에서 본 장면은 아무리 현실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단계 건너서 보는 ‘2차 세계’이지, 결코 ‘1차 세계’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사진에 숨어있는 의도와 배경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은 현실을 왜곡하는 상징과 조작의 도구로 사진을 활용하는 국가”라며 “북한이 공개하는 미사일 발사 장면에는 ‘정보 왜곡’이 숨어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언론매체가 북한이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검증 절차 없이 이미지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화려한 이름(Glittering Generality), 나쁜 이름(Name Calling)’ 붙이기식의 나치 선전술을 모방한 북한의 프로파간다를 주목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의 웃으면서도 당당하고 결의에 찬 모습은 일종의 ‘화려한 이름 붙이기’로 북한 주민에게는 우월감과 자신감을 북돋우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며 “반면 남측에 대해서는 ‘삶은 소대가리’와 같은 ‘나쁜 이름 붙이기’로 남남 갈등과 불안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부의 무대응과 언론의 수동적 전달은 극민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며 “정부의 적절한 분석 및 대응과 언론의 적확한 해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합참 정보본부는 미군의 도움을 얻어 북 미사일 궤도 추적에나 집중할 뿐, 북한이 공개한 표적 폭발 장면이 실제 발사체에 정확하게 맞아서인지, 연출된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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