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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산골 어린이와 노인들이 만든 장수군 ‘별밤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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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 번암지역서 올해로 세번째 마을축제

경향신문

지난 13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복지관에서 열린 파랑새중창단 공연을 객석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대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위 사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로 결성된 메아리합창단 단원들도 찬조 출연해 손주들을 격려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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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오갈 데 없는 아이들

아동센터서 음악·그림 배워

어르신들도 중창단 만들어

각종 축제 찾아 위문공연도


전북 장수에 사는 이정연양(10)의 엄마는 필리핀에서 왔다. 농사일을 다니는 엄마·아빠를 대신해 7살, 8살 된 두 동생을 돌보는 일은 정연의 몫이다. 그래도 정연은 피아노를 곧잘 친다. 유치원 때부터 두 동생을 데리고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면서 익힌 솜씨다. 삼남매는 오후 3시쯤 센터에 와서 저녁까지 먹고 9시나 돼야 집에 돌아간다.

김대식군(12)의 엄마도 베트남 이주 여성이다. 대식의 아빠는 술을 입에 달고 산다. 엄마가 상추 따는 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다. 대식에게는 센터 선생님들이 엄마이자 아빠며 다정한 친구가 된 지 오래다.

장수군 번암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29명의 어린이들도 정연, 대식과 비슷한 사정이다.

산골인 번암면은 전체 인구가 2400여명에 불과하다. 면소재지에도 변변한 학원 하나 없다. 어쩌다 학원이 생겨도 원생이 없어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예 학원이 사라졌다. 방과 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둥지가 돼준 곳은 지역아동센터였다. 이곳에선 그림과 음악 등 도시 아이들처럼 예체능 활동을 배울 수 있다. 8년 전에는 전체 어린이들이 파랑새중창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오후 6시30분, 번암면 복지회관 주차장이 사람들로 북적댔다. 3층 강당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뒤를 이어 어르신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울려퍼졌다. 이날은 파랑새중창단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파랑새 합창’ 콘서트가 열린 날이다.

“힘든 일 하는 부모님께 선물

노래 부르며 꿈이 생겼어요”


어린이들은 동요와 가곡, 가요를 넘나들며 9곡을 율동까지 곁들여가며 불렀다. 백세영양(13)은 “아동센터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연습을 하면서 꿈을 갖게 됐다”면서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에게 오늘 음악회가 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녀·손주들이 음악회를 열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평균 연령 70대인 30명이 4년 전 메아리합창단을 꾸렸다. 이날 콘서트에서 메아리합창단은 틈틈이 연습한 ‘주인공은 나야 나’ 등 2곡을 불렀다. 귀농인들로 구성된 기타와 색소폰 동호회원들도 찬조 출연해 힘을 보탰다.

파랑새 콘서트는 올해로 세 번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악기도 사주고, 매주 전주에서 왕복 3시간 길을 달려와 재능기부를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에 보답하듯 파랑새중창단은 지난해 CTS방송국이 주관한 중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각종 축제에 초청되고 노인복지관 위문공연도 수시로 펼치는 등 이름을 알리고 있다.

김영순 아동센터장은 “번암은 해가 지면 암흑세상으로 변할 만큼 고립돼 있는 산골인데 지역공동체들이 하나가 돼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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