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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폐지 주워 생계 잇던 노인들, 불난 여인숙 쪽방서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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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70·80대 3명 사망

값싼 월세 빈곤층 주거지로

낡은 목조건물 순식간 불타



경향신문

잿더미 위로 안타까운 시선 19일 새벽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여인숙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대원의 모습을 한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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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던 노인 등 3명이 숨졌다. 이들이 ‘달방’(한 달치 요금을 월세처럼 내는 것)으로 썼던 곳은 면적이 6.6㎡(약 2평)에 불과한 쪽방이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린 사회 소외계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전북소방본부와 경찰은 이날 오전 4시쯤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70~80대 여성 2명과 남성 1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명은 폐지를 수거하며 생활해온 장기투숙객이었다. 1명은 숙식하면서 여인숙 관리를 해주던 ㄱ씨(82)로 확인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계급여 22만원을 포함해 매달 57만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 극빈층일수록 사고 위험에 더 노출된 결과다.

불은 76㎡ 건물을 모두 태운 뒤 2시간 만에 진화됐다.

사고가 발생한 여인숙은 1972년에 지어진 ‘목조·슬래브’ 건물이었다. 객실은 모두 11개였지만 지은 지 47년이나 돼 낡고 허름했다. 객실 출입문은 나무로 돼 있고 내부는 주방 없이 이불을 깔고 자는 방으로만 돼 있다. 창문이 없는 방도 있었다고 소방본부는 전했다. 말 그대로 ‘쪽방 여인숙’인 셈이다.

여인숙은 1970~1980년대 호황을 누리던 숙박업소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사라졌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빈곤층들이 값싼 월세를 내고 주로 이용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여인숙에는 11명이 살고 있었으나 이날 집을 비웠거나 대피해 대형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설을 가진 전주시 덕진구 모 여인숙 주인은 “일용직 노동자 등 생활이 녹록지 않은 사람들이 싼 숙소를 찾아 오래된 여인숙에 온다”며 “하루 7000원씩 계산해 한 달에 한 번 숙박비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사는 게 녹록지 않다보니 방에서 간이 취사도구를 놓고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들이 많았다”면서 “여인숙 주변에는 폐지가 자주 쌓여 있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화재가 발생한 시간대의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여인숙을 오고 간 인물이 없는 점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불이 난 때가 새벽시간인 데다 낡은 목조가 많아 희생자들이 대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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