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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글로벌 아이] 100 대 0으로 이기는 외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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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승욱 도쿄총국장


‘아베 총리가 (한국을) 신용하지 않는 이유’ ‘모든 것은 문 대통령의 책임’ ‘나락에 떨어진 비민주 한국’ ‘경제 파탄도 일본에 책임 전가’….

혐한 논조로 유명한 일본의 월간지 9월호의 기사 목록이다. ‘특집, 한국 붕괴 직전’이라는 기획으로 묶여 있는데,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소위 ‘안 봐도 비디오’형 기사들이다. 우익들의 자기만족, 일본 관료사회와 언론계에서 유행이라는 아베 정권에 대한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림)가 본질이다.

욕하면서 닮고,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한국의 일부 정치인, 일부 언론에서도 일본에 대한 극단적인 주장과 보도가 쏟아진다. 사태 해결엔 관심이 없고, 양국 국민들 사이를 갈라놓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듯한 무책임한 주장들이 많다. 아베의 경제 보복에 내심 반대하는 일본 내 ‘멀쩡한’ 이들까지도 깜짝 놀라 ‘한국의 적’으로 돌아서게 만든다.

이런 가운데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일단 방향을 잘 잡은 느낌이다. 일본에 대화를 촉구한 대목도 그랬지만,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는 부분에 특히 반응이 좋았다.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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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인과 언론은 방사능 문제를 부추겨 올림픽을 망하게 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줄 알았는데, 대통령 말씀을 들으니 안 그런 것 같아 다행”이라는 이들이 꽤 있다. 1970년대 일본 유력신문 서울 특파원을 지낸 80세 일본인 사업가는 “현상을 적확하게 분석해 갈등 타개를 위한 대화를 아베 정권에 요청한 격조 높은 연설”이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쟁이나 사법부 판결이 아닌 외교의 영역에서 ‘100% 승리’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사히 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과거사 반성에 소극적이라는 한국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베 정권이 다시 한반도에 관한 역사 인식을 밝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언론엔 아사히가 일방적으로 한국 편을 든 것처럼 보도됐지만, 이 역시 사실 왜곡이다. 아사히는 먼저 한국에 대해 “전 정권이 맺은 것이라고 해도 국가 간 약속이 휴지가 된다면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며 위안부 합의 재평가와 존중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100 대 0이 아닌 60 대 40, 51 대 49의 승리를 추구하는 게 맞다면 한국이 먼저 그 해법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면 어떨까.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본 내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 또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말이다. 대화를 먼저 촉구한 문 대통령의 용기라면 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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