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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평등한 세상 앞당길 수 있다면 '악마'라 불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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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만다 아디치에]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 출간

다음 달 발매되는 영국판 '보그' 9월호는 메건 마클 영국 왕손 부인이 객원 에디터로 참여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여성 15명을 선정했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41)는 미셸 오바마 전 미국 퍼스트레이디, 제인 구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아디치에는 제3세계 국가에서 온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소설을 써왔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조선일보

19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난 아디치에는 "어제는 젊은 한국 여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몰카' 범죄에 대해 듣고 충격을 받았고, 여성들이 '김치녀'(남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말)를 '김치남'으로 바꿔 부르는 현상도 흥미로웠다"고 했다. /민음사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작가 아디치에가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민음사)의 한국판 출간을 기념해 내한했다. 나이지리아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10대 소녀 캄빌리가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독립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진보 언론사 사장이자 독실한 종교인으로 이웃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는 집안에선 "악마를 없애야 한다"며 폭력을 일삼는다. 19일 만난 아디치에는 "아버지가 매질을 시작하기 전에 꼭 방문을 잠갔다는 내 친구의 끔찍한 이야기에서 시작됐다"면서 "종교와 신념의 이름으로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상황을 통해 신앙심의 복잡한 면모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아메리카나'도 새로 표지를 입혀 함께 출간됐다. 나이지리아 소녀가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겪는 정체성 혼란과 흑인 청년들의 사랑을 재치 있게 묘사했다. 최근 영화화를 위해 '블랙팬서'의 배우 루피타 뇽오를 만났다는 아디치에는 "그전까지 쉽게 듣지 못했던 흑인들 간의 사랑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가난이나 에이즈, 내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삶'을 찾아온 나이지리아 이민자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디치에는 화장품과 옷을 사랑하며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에도 자주 등장하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이날은 곱슬곱슬한 머리를 살린 '아프로 헤어(둥글게 부푼 곱슬머리)'를 하고 왔다. 그의 소설에서 아프로 헤어는 흑인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한다. "미국 대학을 다닐 땐 지성인처럼 보이기 위해 오히려 외모에 관심이 없는 척했다. 하이힐도 신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소설가로서의 내 능력을 인정받고 나서야 패션과 유행에 관심이 많다고 '커밍아웃'할 수 있었다." 그는 "물론 여성스러운 외모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들도 존경한다"면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고, 미(美)의 기준이 다양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에세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의 저자로 더 알려졌다. 영상 조회 수 550만을 넘긴 테드(TED) 강연 내용을 옮긴 책으로, 스웨덴에선 성 평등 교육을 위해 전국의 학생들에게 이 책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가수 비욘세는 강연의 일부를 인용해 노래 '플로리스(Flawless)'를 만들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선 가정 파탄, 남성 혐오를 이끄는 주범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면서 웃었다. "평등한 세상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악마라고 불려도 괜찮다. 내 책을 읽고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졌다는 남성 독자들,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여성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디치에는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면서 "남녀 모두에게 강요되는 성 역할과 성별에 따른 사회적 기대를 없애는 것이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지리아 남자들에겐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이 성행하면 데이트 비용도 공평하게 부담할 수 있고 돈도 아낄 수 있다고!"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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