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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35] 소심한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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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오늘은 찰스 다윈이 악몽 같은 두 달을 보내고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쉰 날이었다. 1858년 6월 18일 다윈은 평소 알고 지내던 젊은 학자 월리스가 보내온 편지에 혼비백산한다. 그 편지에는 20쪽짜리 논문 한 편이 들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다윈이 지난 20여년간 애지중지 다듬어온 자연 선택 이론의 에센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평생의 위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그의 절친한 동료인 지질학자 라이얼(Charles Lyell)과 식물학자 후커(Joseph Hooker)는 위험천만한 계략을 꾸민다. 단 하루라도 먼저 출판하는 게 혹독할 만치 준엄한 평가 기준인 학계에서 우선권은 명백히 투고 준비가 끝난 논문을 보내온 월리스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윈이 그동안 써온 단문과 편지들을 묶어 논문으로 급조해 그해 7월 1일 런던린네학회에서 발표하도록 주선한다.

월리스는 말레이군도에서 연구 중이라 오지 못했고, 평소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렸던 다윈도 학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논문 대독 순서는 다윈 먼저, 그리고 월리스였다. 이어서 8월 20일에는 두 논문이 드디어 런던린네학회지에 나란히 실린다. 자칫 후배 학자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비난에 휩싸일 수도 있었건만 동료의 세심한 배려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마터면 평생의 업적을 날릴 뻔했던 다윈은 부랴부랴 자신의 자연 선택 이론을 요약해 이듬해인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한다. 서문에서 다윈은 불완전한 요약본일 수밖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기서 언급한 내용의 출처가 되는 참고 문헌이나 저자명 중 일부를 밝히지 못했다. 다만 내가 언급한 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독자들이 믿어주기 바랄 뿐이다.” 요즘 같으면 영락없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두르느라 저지른 허물이었다는 학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줬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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