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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막겠다는 당국, 어쩔수 없단 교사…현장엔 여전한 `셀프 학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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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전형 앞두고 `셀프 학생부` 여전히 기승

컨설팅업체 맡기기도…학종 전형 취지 `무색`

교육부 "이달 중 신고센터 개설해 관리 강화"

교사들 "혼자 100여명 학생 관리 불가능해"

이데일리

경남 A고등학교의 한 교실 컴퓨터에 학생부 작성요령과 작성란이 담긴 파일이 탑재돼 있는 모습. 학생들은 이를 공유해 틈틈이 학생부를 작성한다.(사진=독자 제공)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관찰·평가해 작성해야 하는 학교 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를 학생이 직접 작성하는 이른바 `셀프 학생부`가 여전히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다. 학생부는 대입 전형에서 4분의1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쓰이는 만큼 셀프 학생부가 학생부 신뢰도를 떨어트려 학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교사들도 이를 인정하면서도 교사 1인당 너무 많은 학생을 관찰하고 기록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학생이 직접 작성하도록 학생부 파일 공유해

다음 달 6일부터 시작되는 2020학년도 대입 수시 모집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고3 학생부 작성이 한창이다. 교사들은 학생부에 수상내역, 자격증, 창의적 체험활동(진로·자율·봉사·독서·동아리활동), 교과학습(내신성적),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종합의견 등 학생 개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요소를 기재해야 한다. 학생부는 수시 전형 중 학종과 학생부교과 전형 등에서 평가자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이 본인의 학생부를 기록하는 관행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셀프 학생부 근절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평가·학생부 신뢰도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속수무책인 셈이다. 실제 경남 A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준비로 바쁜 고3들이 직접 학생부를 작성 중이다. 작성 항목은 창의적 체험활동과 교과목 별 개개인의 학업능력이나 노력·활동과정을 기재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등이다. 교사가 공유한 문서를 USB나 이메일로 받아 작성하는가 하면 각 학급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 파일을 통해 틈틈이 기입하기도 한다.

학생이 기입한 학생부를 수정·보완 해주는 교사도 있지만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고 오탈자 정도만 확인한 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부를 허위로 기재할 경우 교육공무원 징계 규정에 따라 중징계인 파면까지 당할 수 있음에도 학생·학부모의 수정요구나 마찰을 고려해 대부분 학생들이 작성한 내용을 그대로 싣는다.

다른 지역의 B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백일장이나 동아리 활동과 같이 창의적 체험활동이 있는 날엔 학생들에게 스스로 활동내용을 적게 한 후 교사에게 제출토록 한다. 이 학교 교사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이 학생부를 먼저 작성해 제출하면 교사가 오탈자 등을 확인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업체에 학생부 맡기기도…학종 취지 무색

학생들은 부담감을 호소한다. 학업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학생부 작성까지 학생이 직접해야 하냐는 것. 고3인 정모(18) 학생은 “학생의 생활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건 교사의 몫인데 왜 학생이 해야하냐”며 “자기소개서처럼 신경써서 써야하는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반면 일부 학생들은 오히려 셀프 학생부가 자신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며 선호한다. 심지어 입시학원이나 컨설팅업체 등에 학생부 작성을 맡기기도 한다. 사실상 학생부가 학생에 대한 관찰사항이 아닌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에 가깝게 변질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학생부의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학종 전형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종은 2020학년도 대입 전형의 24.5%, 서울 주요 15개 대학으로 한정하면 43.7%를 차지하는 만큼 현재 대입 전형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고3 진학업무를 담당하는 한 부장 교사는 “학종의 취지는 좋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공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학생선발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 “관리·감독 강화”…교사 “현실적 어려움”

교육당국은 이달 내로 셀프 학생부 사례 신고가 가능한 온라인 학생부 기재·관리지원센터를 개설,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교육청이 관할 중·고교를 대상으로 매년 전수조사 수준의 현장 방문점검을 하도록 했다”며 “하지만 셀프 학생부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학생부 속 문장 밖에 없기 때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8월 중 학생부 기재·관리 업무 지원과 학생부 관련 부적절 운영사례를 신고할 수 있는 온라인 센터를 설치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교사들은 학생부 취지를 살리기엔 현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가령 학생들의 교과목 별 특기사항을 적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적기 위해선 교사 1인당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의 학생을 관찰해야 한다. 교사가 여러 반에서 교과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 담임까지 맡은 경우 각자 맡은 반 학생 학생부까지 관리해야 한다. 한 교사는 “모든 학생의 활동을 일일이 파악하고 이를 상세하게 풀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학생 본인이 스스로를 잘 아는 만큼 학생이 먼저 작성하고 교사가 이를 수정·보완해주는 게 현실적”이라며 절충안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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