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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목멱칼럼]건설 '업자' 아닌 '사업자'로 바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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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이데일리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명사의 서가 - 이상호 건설산업연구원장 인터뷰


때로는 이름이나 호칭이 내용을 규정하거나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가 상품이나 회사 이름을 짓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좋은 이름은 실제와 관계없이 내용도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나쁜 이름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나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내용이 좋건 나쁘건, 기왕이면 좋은 이름이 좋을 것이다.

올해 4월 개정한 ‘건설산업기본법’의 후속 조치로 최근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개정안은 ‘건설업자’라는 단어를 ‘건설사업자’로 대체해 11월 1일부터 시행토록 한다는 것이다. ‘업자’라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처럼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만 인식한다면 딱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업자’라는 단어는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 및 공무원과의 결탁과 비리 등에 연루돼 사업을 영위해 온 자’라는 식의 부정적 의미로 통용돼 왔다. 그런 의미의 ‘업자’ 앞에 ‘건설’이란 단어까지 덧붙여서 ‘건설업자’라고 하면 그 부정적 의미는 더 커진다. 영화를 보건 드라마를 보건, 등장하는 건설업자는 대개 부정부패와 비리의 주역으로 묘사돼 왔다. 이처럼 부정적 의미를 지닌 건설업자라는 단어는 1958년 ‘건설업법’ 제정 때부터 법적 용어로 버젓이 자리를 잡았다. 그 이전에는 ‘청부업자’라고도 불렀다.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됐던 ‘청부업자’라는 단어는 ‘건설업자’보다 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무튼 2019년에야 비로소 ‘건설사업자’로 바뀌게 된 것은 때늦은 감이 크지만, 건설산업 종사자들로서는 다소나마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조치로 환영할만하다.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꾸어야 하는 법령은 ‘건설산업기본법’만이 아니다. 모든 건설, 부동산, 계약 관련 법령의 용어도 ‘건설사업자’로 변경하도록 했다. 오는 11월 1일부터 개정 법령이 시행되면 건설산업의 이미지 제고와 건설인들의 사기 진작에도 도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법령에서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뀌었다고 11월부터 우리 국민들이 모두 그렇게 불러 줄까? 당장은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건설업계에도 있다. 부실공사와 안전사고, 뇌물 수수와 입찰 담합 등 건설업계의 부정부패나 비리 사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돼 왔다. 일부 시민단체는 건설업계를 ‘토건족’이라는 단어로 싸잡아 매도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건설업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 ‘건설사업자’라는 명칭 변경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누적된 부정적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다. 건설산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법령에서 ‘건설사업자’로 명칭을 바꾼 것과 무관하게 계속 ‘건설업자’라는 단어를 고집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공은 건설업계로 넘어왔다. ‘건설업자’를 법령에서 ‘건설사업자’로 변경한 것을 계기로 건설업계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명칭 변경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불법이나 탈법을 비롯한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과 온전히 결별해야 한다. 입찰, 하도급 등 건설사업 과정의 요소요소에 존재하던 부정과 비리 소지를 없애야 한다.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의 상생경영도 이루어야 한다. 부실사고나 안전사고는 사라져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 이 같은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법령에서 ‘건설사업자’라고 이름을 바꾸어도 정착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건설산업은 여전히 국가기간산업이고 거대산업이다. 지금도 건설투자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를 넘고, 종사자 수는 200여 만명이며, 건설업체 수는 7만여 개사에 달한다. 이 같은 거대산업의 종사자들을 싸잡아 ‘적폐’로 몰아가거나 ‘건설업자’로 비하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고 바람직하지 못하다. 누구보다 먼저 법령 개정을 계기로 건설인 스스로 부정적 의미의 ‘건설업자’가 아니라 새로운 ‘건설사업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도 ‘건설사업자’라는 법령상의 호칭을 사용하면서 건설업계의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을 요청했으면 한다. 이제 우리 건설산업에 ‘건설업자’는 없고 ‘건설사업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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