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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유레카] ‘정치보복’의 가해자와 피해자 / 김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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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 한복판 호텔에서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납치됐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지시로 40여명의 요원이 동원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위협한 정적을 납치·살해하려던 박정희 정권의 명백한 ‘정치보복’이었다. 5일 만에 서울 동교동 집으로 살아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매년 그날을 ‘재득명’ 기념일로 정해 주변 사람들과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는 국세청에서 시작됐다. 국세청 조세개혁티에프(TF)가 2017년 ‘조사권 남용’이었다고 밝혔듯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후원자였던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먼지 털듯이 표적조사했다.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제보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결국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수사는 전직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간 정권 차원의 ‘정치보복’이었다.

2017년 10월 국정농단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이 1심 구속 만기 6개월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자 재판부가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0월16일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이후 재판 거부에 들어갔다. 변호인들도 사임했다.

이듬해 1월17일 이번엔 검찰 소환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인사무실로 기자들을 불렀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회견을 자청해 “최근의 정치보복을 보며 대한민국 근간이 흔들리는 참담함을 느낀다”며 자신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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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나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의 정치’를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한 장의 사진이 기억난다”고 했다. 1998년 7월31일 청와대 만찬장에서 포즈를 취한 5명의 전·현직 대통령 사진이다. 김 전 대통령 왼편에 노태우·최규하, 오른편에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이 나란히 선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하다. “(그때는) 정치보복은 없었다”는 황 대표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보복’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진정 누구일까. 재판 중인 두 전직 대통령과 황 대표만 모르는 것 같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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