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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오래 전 '이날']8월21일 정책적 판단, 법적 판단, 그리고 여론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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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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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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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1일 국가경제 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죠.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에 직면한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일명 ‘IMF 사태’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졌을까요? 국가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정책 결정을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일까요, 아닐까요?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 1면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아니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1997년 IMF 사태의 책임자로 기소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중 대부분에 대해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인데요.

당시 판결은 두 피고인이 경제위기의 실상을 제 때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아 대통령이 국정 총책임자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잃게됐다는 검찰 및 국회 경제청문회의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강 전 부총리는 97년 10월 말 당시 한국은행이 국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거론하며 IMF 구제금융신청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때 “우리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고 강변했기 때문에 그의 상황인식 및 보고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는 법원의 판단은 여론과 크게 엇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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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1면


앞서 검찰은 이들이 ‘환란’을 초래한 부분이 있다고 보고,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직권남용 혐의 중 대출압력 부분만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진도그룹에 1060억원(강 전 부총리), 해태그룹에 1000억원(김 전 수석)의 협조융자를 하도록 채권은행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대출압력 부분도 유죄라고는 하지만,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며 각각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유예했습니다. 선고유예란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룬 뒤 유예기간이 지나면 면소(免訴)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인데요. 선고한 형의 집행을 잠시 보류하는 집행유예와는 다릅니다. 집행유예는 유예기간 중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형을 집행하는데, 선고유예는 유예기간 중 문제가 생기면 법원이 형을 선고하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조속한 IMF행을 결정하지 못한 점을 탓할 수는 있지만 외환 사정의 심각성을 의식적으로 축소·은폐 보고했다는 증거나 고의성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의식적’과 ‘고의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죄형법정주의와 여론의 대결에서 법적 안정성을 위해 정치적 논리를 배격한 용기있는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부 검사들도 “환란 사건은 정치에 휘말려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한 사례”라며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였다”는 시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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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3면. 사진 속 웃음과 제목에 눈길을 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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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착잡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과는 있으나 책임은 없다는 것이나”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결정”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은 국민은 어디에 하소연하란 말이냐” 등의 비판이 터져나왔습니다. 공직사회에서도 “아무리 중대한 정책과오라 하더라도 고의성만 없다면 무죄라는 식의 ‘면죄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며 “향후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기강 확립과 책임행정주의 구현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판결 이후 담당 재판부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항의전화가 빗발쳐 업무마비 상황까지 빚었습니다. 자신을 실직자나 부도 기업의 사장이라고 밝힌 시민들이 수화기 너머에서 판결 결과를 비판했습니다. “나라를 망친 강.김씨가 무죄라면 도대체 누가 유죄란 말이냐”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강·김씨에게 면죄부를 주라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줄 아느냐” 라고 꾸짖기도 하고,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거나 딱한 사연을 하소연하며 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법은 2002년 10월 항소심에서도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강 전 총리의 부당대출 압력에 대해서는 1심보다 무거운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1심 유죄 부분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원심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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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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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두 사람을 무죄로 판단했지만, ‘환란 책임자’라는 꼬리표는 그들을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강 전 총리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 했지만 ‘환란 책임자’ 이미지 탓에 입당이 불허됐습니다. 다른 당으로 출마는 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그룹 사외이사 등으로 일하면서 2010년 12월에는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책을 통해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경제총수’로서의 소회를 남겼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해외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고도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IMF 백서’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패한 소방수일 뿐인데, 방화범으로 몰렸다’는 내용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무역협회장으로 내정되던 시절, 역시 ‘IMF 사태 관련자’라는 부분이 잠시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으로 무역협회장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017년 11월에 사임했습니다.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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