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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경기침체 조짐에… 트럼프, 동네방네 화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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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 길 비상등 켜지자 언론·야당·연준 탓하며 음모론까지 제기

조선일보

미국 경기 침체 전조가 나타나자 도널드 트럼프(73) 대통령과 그의 경제팀이 연일 신경질적인 반응을 쏟아내며 온갖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재선(再選)을 막기 위해 통화 당국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야당과 '가짜 뉴스' 언론들은 경제 상황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침체 관련 주장과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리한 경제지표를 아예 부인하는 억지를 부리거나 무리한 무역정책을 밀어붙이다 뒤집기까지 하고 있다.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이처럼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면 자연스러운 경기 하강이 오히려 심각한 침체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각) 트위터에서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끔찍한 비전 부족"이라고 비난하며 "단기간 내 최소 1%포인트 기준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년 대선을 목적으로 경제가 나빠지게 하고 있다. 매우 이기적!"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20일 트위터에서도 '민주당이 반트럼프 전략으로 경기 침체 우려를 활용하고 있다'는 폭스뉴스 기사를 리트윗한 뒤 "그들(민주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건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지난 14일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다우산업평균지수가 폭락하는 등 침체 전조가 하나둘 나타났을 뿐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같이 사방에 대고 화풀이를 하고 있다. "가짜 뉴스 언론들이 내 재선에 해가 될 줄 알고 경제를 망치는 보도를 한다"(16일)고 하더니 자신에게 우호적이던 폭스뉴스가 실시한 민주당 대선 주자 상위 4명과 가상 대결에서 모두 자신이 패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폭스가 변했다. 큰 실수하는 것"(18일)이라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위기설을 진화하겠다고 나선 트럼프 정부의 경제 사령탑 래리 커들로(72)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피터 나바로(69)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도 침체 신호에 공격적으로 반응해 자질 논란을 낳고 있다.

커들로 위원장은 18일 "미국 경제는 이상적이고 경제 위기의 조짐조차 없다"면서 "낙관주의가 뭐가 나쁘냐"고 했다. 이를 두고 커들로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 "부시 정부가 잘해서 침체는 없다"(2007년 12월) "일시적 하강기지만 여름엔 회복될 것이다"(2008년 2월)고 말한 일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관련 학위 없이 20년간 방송에서 경제 평론을 해온 인물로 '한 번도 맞은 적 없는(never right) 커들로'로 불린다.

트럼프 무역 전쟁의 설계자인 나바로도 이날 "미국 경제는 2020년과 그 이후까지 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시 불안에 대해선 트럼프처럼 '연준 탓'을 했다. 나바로는 최근 하버드·시카고대와 연준, 국제통화기금(IMF) 공동 연구팀이 '미·중 관세 전쟁의 비용이 미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데 대해 "피해를 보는 건 중국이지, 미국의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 성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나바로표 침체가 올 수 있다"며 무역 전쟁 중단을 제안하자 "중국 인민일보 같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나바로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중국을 갈기갈기 찢어놔야 한다"며 미국의 모든 경제 문제를 중국의 공격으로 해석,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해왔다. 그는 관세를 무기로 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집행자로 평가받지만, 뉴요커는 "현존 경제학자들 중 단 한 명도 그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계 이단아들에게 의존한 '원맨쇼'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좋다'는 사령탑들 주장과 정반대로 정부 정책은 불안하게 움직인다. 미국은 중국 보복 관세로 타격을 입은 미 중서부 농가에 지난해 보조금 100억달러를 푼 데 이어 올해도 145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중서부 농가는 대선에서 경합주 승부의 키를 쥔 표심층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3000억달러어치 중국 수입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트위터로 알렸다가 2주도 안 돼 '성탄절 소비 심리'를 들어 철회했다. 19일엔 '트럼프 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 중산층 급여세 인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급여세 인하는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려 오바마 정부가 한시 운영했던 세제로 복지 예산 감축과 막대한 재정 적자를 초래한다. 이런 극약 처방을 검토할 정도로 트럼프 정권이 동요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무역 협상에 응하지 않자 트럼프가 초조함에 페이스를 잃고 있다며 이런 '협상용 협박'마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19일 경제학자 226명 조사 결과 "2021년까지 침체가 온다"(74%)고 전망했다고 밝혔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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