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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BTS 떡잎 때 알아봐… 기술 아닌 콘텐츠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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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될 만한 사업'을 찾아 신(新)기술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과감히 '콘텐츠'에 베팅한 벤처투자회사가 있다. 글로벌 K팝 열풍을 이끄는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한국 게임 업계의 차세대 주자인 '검은 사막'의 펄어비스가 이 회사의 투자를 받았다. 박기호(55)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는 LB인베스트먼트다.

조선비즈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L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만난 박기호 대표는 "한국에서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해외 진출이 가능한 기업에 투자한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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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최소한 한국에서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해외 진출이 가능한 기업에 우선 투자한다"며 "이런 기업들 가운데 콘텐츠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산(産) 서비스는 각국의 시장 규제나 소비자의 특성이 달라 해외 진출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영화·음악 같은 콘텐츠들은 그런 장벽이 낮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넷플릭스나 앱스토어·스팀 같은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이를 더 쉽게 해주고 있죠."

◇BTS 알아본 콘텐츠 투자 名家

박 대표는 '벤처 투자'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88년 처음 업계에 뛰어들었다. 30년이 지났다. LB인베스트먼트에는 2003년에 합류해 이 회사의 굵직한 벤처 투자를 지휘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1996년 LG그룹이 설립한 LG벤처투자가 전신(前身)이다. 이후 계열 분리를 통해 LB인베스트먼트로 독립했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인 구본천 부회장이 박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 대표는 "빅히트에 처음 투자할 당시만 하더라도 벤처투자업체가 연예기획사에 돈을 넣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방시혁 프로듀서의 철학에 공감하고, BTS의 성공 가능성을 믿었다"고 말했다. 펄어비스 역시 김대일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핵심 멤버들의 경쟁력이 뛰어나고,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했다. 넥슨·카카오게임즈·네시삼십삼분 등도 LB인베스트먼트의 투자사들이다. 박 대표는 "기본적으로 콘텐츠는 무조건 해외를 겨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타깃 시장이 어디인지, 창업자들의 콘텐츠 개발·창작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투자하다 보니 성공 확률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투자 기회를 놓친 스타트업이 있다. 그는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며 "창업 초기에 우리와 만났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음식 배달 앱의 사업 모델과 시장 규모의 확장성이 얼마나 클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5등도 산다"

LB인베스트먼트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중국 전문 투자사로도 유명하다. 2000년대 중반 상하이에 법인을 세웠고 작년엔 중국 내 2400여 외국계 벤처투자업체 중 성과 기준으로 39위를 차지했다. 박 대표는 "최근에는 중국 스타트업의 트렌드가 한국을 선도하는 모습도 많다"며 "중국 시장을 잘 알아야 한국에서 향후 성공할 분야, 기업을 찾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그는 "중국은 13억 인구에다 모바일 가입자만 수억명이 넘을 정도로 모(母)집단 사이즈가 다른 나라"라며 "한국은 1위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 시장이라고 본다면, 중국은 최소한 탑 5까지는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시장"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투자했던 중국의 동영상 서비스앱인 피피스트림이 대표적 사례다. 피피스트림은 중국 1위 동영상 서비스 업체는 아니었지만, 가입자만 3억명에 달할 정도로 컸다. 이 업체는 중국 바이두가 인수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벤처 투자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올 2분기 중국의 벤처투자금은 작년 2분기와 비교했을 때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대표는 "중국 경기 침체에다 현지 벤처 투자 업체들의 펀드 만기가 다가오면서 투자 환경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중국 내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같은 첨단 기술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어 중국 벤처 생태계 자체의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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