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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세계타워] 조국 딸과 ‘SKY캐슬’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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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학부모, 명문대 ‘학종’ 통과 위해 스펙쌓기 올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내신 조작 파문, 드라마 ‘SKY캐슬’,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의혹. 이들 세 가지를 잇는 열쇳말이 있다. 바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대입 수시 전형 중 하나로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학종은 ‘2인3각’ 경기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팀’을 이뤄야 통과할 수 있다. 학생 혼자 열심히 뛴다고 이길 수 없는 구조다. 교과 성적과 비교과 성적을 두루 잘하는 1등급 아이로 키우려면 ‘공부+알파(α)’를 갖춰야 한다. 알파는 정보와 시간, 인맥과 재력을 갖춘 부모의 뒷받침이 있어야 수월하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이유다.

세계일보

이천종 사회부 차장


예비고사와 학력고사 점수로 줄을 서 대학에 들어간 지금의 학부모 세대 상당수에 학종은 낯설고 불편하다.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이나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가 학종을 이해할 때쯤이면 한발 늦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출발하고 난 뒤다. 그 허탈감과 분노를 연료 삼아 정시 확대론은 활활 타오른다.

교육 흐름의 변화에 민감한 ‘강남엄마’는 다르다. 눈치 빠르게 ‘맹모의 길’을 따라 대치동으로 향했다. 대치동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전학생이 쇄도한다. ‘강남 속의 강남’은 그러나 진입 장벽이 높다. 거대 사교육을 견딜 내공(부모의 재력·권력·시간)을 갖춰야 버틸 수 있다. 영어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영재학교-과학고-특목고’의 고입 지옥에 뛰어들어야 한다. 3년 선행학습은 대치동에서는 불문율이다. 학원가는 불야성을 이룬다. 초등 1~2학년에서 영재학교 입학 전까지 7∼8년간 1명당 사교육비만 1억6000만원 정도다.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넣을 스펙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어야 한다. 교수들이 품앗이하듯 자녀를 서로의 논문에 공저자로 올려주고, 그럴듯한 인턴 자리에 꽂아준다. 아이가 혼자 뚫을 수 없다. 학벌에 재력까지 갖춘 강남엄마가 ‘쓰앵님(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빗댄 말)’을 통해 엮어준다. SKY캐슬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러니 교사들조차 ‘생(生)기부’가 아니라 ‘사(死)기부’라고 비아냥댄다. 요즘 대치동에선 스타강사 정보에 밝던 ‘돼지엄마’는 사라졌다. 학원 마친 아이를 픽업해주려 기다릴 때도 ‘학종 스펙’ 카톡방에서 분주하다. 선수로 뛰는 학생보다 더 바쁘다.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고, 가성비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 동네에선 아마추어다. 입시 관점에서 영재학교 준비는 손해 볼 게 없다. ‘영재학교-과학고-전국형 자사고-특목고’는 서울대나 의대 지름길이다. 이 과정을 준비하다 떨어져도 일반고 내신 상위권을 차지해 학종을 노릴 수 있다. 수학 경시대회 문제를 술술 풀고, 토익 만점에 가까운 ‘대치동 키즈’에게 내신은 식은 죽 먹기다. 만에 하나 실패하면 돈을 들여 재수를 하면 된다. 명문대가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기 수월하니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고교서열화 해소’ 정책은 겉돈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로 들썩이더니 고교서열화의 정점인 ‘원조 자사고’는 거의 살아남았다. ‘사교육 끝판왕’인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처음부터 무풍지대였다. 올 초 나온 초·중·고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입시의 공정성 훼손 논란이 곪아 터지면 그 끝은 비극적이었다. 이기붕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양아들로 내준 이강석의 서울 법대 부정 편입 사건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은 대통령 탄핵을 낳았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천종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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