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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한·중·일서 다른 의미 갖는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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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한국·중국·일본 등 한자(漢字)를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거나 과거에 사용했던 ‘한자문화권’ 나라의 어휘에는 ‘한자어’가 많다. 한·중·일 세 나라의 언어는 제각각이지만, 문화권이 같다 보니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 나라 말에서 의미와 발음이 완전히 같은 단어가 있다. 주민(住民)이 그렇다. 도서관(圖書館)처럼 의미는 같지만, 발음은 약간 차이 나는 단어도 있다. 중국에서는 ‘투슈꾸안’, 일본에서는 ‘토쇼칸’이라고 발음한다.

표기와 의미는 같으나, 발음이 두 나라는 비슷하고 나머지 한 나라는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있다. 한국어 ‘환영’(歡迎)은 중국에서는 ‘후안잉’, 일본에서는 ‘칸게에’라 하여, 한·중의 발음이 유사하고 일본어 발음이 크게 다르다. ‘교과서’(敎科書)는 중국에서는 ‘쟈오커슈’, 일본에서는 ‘쿄오카쇼’라 하는데, 한·일의 발음이 유사하고 중국어 발음은 차이가 크다. 표기와 의미는 같지만, 발음은 완전히 제각각인 사례도 있다. ‘학습’(學習)은 중국에서는 ‘쉬에시’, 일본에서는 ‘가쿠슈우’라고 한다.

한국어 ‘공부’(工夫)는 ‘학문·기술의 학습’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중국어 ‘쉬에시’(學習), 일본어 ‘벤쿄오’(勉?)와 상통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한국어에서 ‘면강’은 ‘억지로 하거나 시킴’을 뜻한다. 위험이 예견되면, 한국인은 조심(操心)하라 이르고, 중국인은 소심(小心·‘샤오신’)하라고 말하며, 일본인은 용심(用心·‘요오진’)하라고 외친다. 한국어에서 소심은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음’을 뜻하고, 용심은 ‘마음을 씀’을 의미한다. 이처럼 나라마다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화 차이를 반영해 조어법(造語法)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때로는 동일한 한자어가 한·중·일 세 나라 말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공부’(工夫)가 대표적 예다. 중국어 ‘꽁푸’는 ‘틈, 또는 자투리 시간’을 가리키고, 일본어 ‘쿠후우’는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궁리’(窮理)를 의미한다. 같은 한자어가 나라마다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는 점을 모르고, 자기 방식으로만 해석하면 종종 오해가 발생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는 경기 후 일본 기자들 앞에서 ‘쿠야시이’(悔しい)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은 이를 일한사전에 따라 ‘분(憤)하다’로 번역해 보도했다. 그 내용을 전해 들은 한국인은 ‘남 탓한다’고 분개했다. 한·일 두 나라에서 ‘분하다’라는 말의 뜻이 다르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허탈한 사건’이었다. 한국어에서 ‘분하다’는 ‘억울하다’와 같은 뜻으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담고 있지만, 일본어의 ‘쿠야시이’는 ‘아쉽다’ 또는 ‘속상하다’의 뜻으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을 나타낸다.

이처럼 ‘같은 단어, 다른 의미’의 한자어 오역이 여론을 자극해 국가 간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속하면 오해와 편견이 오히려 증폭된다. 나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협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마음으로 ‘소통’해야만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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