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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세계포럼] 트럼프의 ‘천박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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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케네디 품격, 美 국격 높여 / 트럼프는 국가 분열·동맹국 무시 / 전통적 美 가치 헌신짝처럼 버려 / “나라 위대해져” 자찬에 환멸 커져

노예 해방 찬반논쟁이 부른 미국 남북전쟁은 미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인구 3100만명 중 62만명이 전사하고 40만여명이 부상했다. 보통 이 정도의 인명피해가 났다면 책임소재를 엄격히 가려야 정상이다. 패한 쪽의 지도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끝난 뒤 한명도 전범으로 몰려 처형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관용과 통합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공화당 급진파가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엄벌과 과거 청산을 압박했지만 링컨은 ‘국가 통합을 위해 사면해야 한다’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세계일보

김환기 논설위원


남부연합 임시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3년을 복역한 뒤 공직에 복귀했다.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는 대학 총장으로 일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미국 정치에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볼 수 없는 건 링컨의 관용과 통합 리더십이 낳은 아름다운 전통이다. 링컨이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이유다.

“자유의 수호를 위해 어떠한 대가도 치르고 어떠한 고난에도 맞서겠습니다. 우리의 동맹국들에게 성실한 친구로서 의리를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빈곤의 사슬에서 헤어나려고 싸우는 지구촌 빈민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취임 연설문 내용이다. 자유의 수호와 동맹국에 대한 의리, 후진국 원조가 키워드다.

케네디는 “이 역사적인 과업에 참여하지 않으시렵니까”라며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뉴 프런티어(신 개척자)’ 정책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많은 젊은이가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기꺼이 평화봉사단 활동에 지원해 오지로 갔다.

미국사학자 김봉중 전남대 교수는 저서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에서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뛰어넘어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한 케네디의 품격은 현대 미국을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진단했다.

링컨, 케네디 같은 품격 있는 대통령들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국격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무원칙하고 천박한 리더십 탓이다.

트럼프의 머릿속엔 미국의 이익만 존재한다. 동맹의 가치도 장삿속 계산으로 판단한다. “돈이 많이 드는 한·미 훈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동맹국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보다 적성국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편을 드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와 의무, 예의를 안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의 대외원조 자금은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트럼프 정부가 유엔 평화유지기금 등 수십억 달러의 원조 자금 지원을 취소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마당이다. 대외원조는 낭비적인 지출이라는 게 트럼프의 기본 인식이니 전면 중단될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케네디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동맹국 보호와 국제사회 원조에 매진했던 케네디가 땅을 칠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인종차별, 여성혐오 발언도 트럼프는 서슴지 않는다. 이민자 출신이거나 이민자 조상을 둔 진보진영 여성 하원의원들을 겨냥해 “출신지로 되돌아가라”는 말을 해 파문을 낳았다. 백인 표를 결집하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다. 다문화 이민국가인 미국의 건국 기초를 허무는 처사와 다름없다. 관용과 통합 리더십의 기초를 세운 링컨을 모독하는 망발이다.

감동 없는 트럼프의 취임사는 “우리가 함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는 말로 끝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계층·인종 갈등이 심화하고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금이 가고 있으며, 국격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경제수치를 조금 올려놓은 걸 내세우며 “미국이 위대해지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으니 이런 몰염치가 없다.

관용, 자유 수호, 세계평화 공헌 등 미국적 가치는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양식 있는 미국인과 세계인들의 환멸은 커져 간다. 트럼프는 국격을 가장 떨어뜨린, 가장 품격이 낮은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역사의 평가가 두렵지 않은가.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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