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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사설] 의제강간 기준 연령 상향, 미성년자 보호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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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의 탐사기획 ‘은별이 사건 그후’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매년 4000∼5000명의 아동이 성범죄에 노출되고 그중 41.3%(2018년 기준)가 강간·유사강간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우리 형법은 13세 미만 아동과의 성관계를 사실상 ‘무조건’ 처벌하는 의제강간 연령 조항을 두고 있다. 1953년 9월 별다른 사회적 합의 없이 만들어진 ‘출처 불명’의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이 66년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에 대한 국내 연구 논문이 고작 4편일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13세만 넘으면 성폭력이 ‘사랑’으로 둔갑하곤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42)씨가 15세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어 임신에 출산까지 하게 만들었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은별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끔찍한 아동 대상 성범죄가 국민의 공분을 일으킬 때마다 ‘의제강간 연령을 지금보다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법무부는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할 뿐 소극적이다. 2017∼2019년 법원이 선고한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1심 판결 49건 가운데 실형 선고까지 간 경우는 42.9%에 그쳤다. 53.1%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정에선 여전히 “외모가 성숙해서 몰랐다” “저항하지 않았다” “사랑이었다”는 궤변이 난무한다.

대다수 선진국은 아동의 ‘성적 동의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삼는다. 미국은 주마다 16∼18세로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17세, 영국·캐나다는 16세다. 아시아에서도 우리보다 성적 동의 연령이 낮은 나라는 필리핀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사회적 논의를 거듭하며 자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반영해 성적 동의 연령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만 제자리걸음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일보의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이 성범죄 위험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3.7%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76.8%는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상향 연령으로는 18세를 꼽은 응답이 24.9%로 가장 많았다. 13세 이상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차단하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국회가 나서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자 보호는 사회적 책무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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