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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단독] 생명공학인 커뮤니티에서도 ‘조국 딸 논문 1저자’ 비판글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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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2주 만에 쓸 수 있는 논문을 우리는 왜 2∼3년 동안 쓰나”

세계일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공계 박사로서 상대적 박탈감 느낀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28)씨가 한영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학부형 인터십 프로그램’을 통해 한 의학논문에 제1저자로 등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실망과 분노가 확산하는 가운데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논문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 게시판에도 성토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브릭은 석·박사나 포스닥(박사 후 과정) 과정에 있는 젊은 생명공학인들의 모인 커뮤니티다. 회원 규모는 약 8만명으로 국내외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과학도 숫자만 6만5000명이다. 2005년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발표한 논문에서 DNA 지문분석 조작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곳이다.

21일 생명공학계에 따르면, 브릭 게시판 ‘소리마당’에는 조씨가 제1저자로 등록된 의학 논문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HIE)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이 까다로운 연구는 아니라면서도 고등학생이 2주 만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해당 논문은 질병이 있는 신생아 혈액을 이용해 산모와 아기 유전자 연관성을 분석한 논문이다. 본인을 서울 소재 대학 생물학 교수로 소개한 A씨는 “2주 간의 연구실 생활, 영작 등으로 제1저자를 허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며 “(생명공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저자 기준에도 맞지 않고 현재와 미래 연구원들에게 잘못된 기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경우 논문에서 제1저자는 연구데이터 수집과 결과 도출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한 저자, 논문의 초안을 작성한 자로 규정한다.

세계일보

자신을 10년 이상 생명공학 분야에서 일했다고 소개한 B씨도 “매일 밤을 새며 논문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남들이 봐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인지 고민해서 쓴다”며 “연구에 2주 참여하고 논문을 써서 제1저자를 줬다고 하면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연구생 C씨도 “학술지에 여태껏 연구를 투고했던 연구자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고등학생이 2주만에 쓰는 수준의 폐급으로 만들어버렸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연구와 논문 작성에 참여한 고교생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2주간 참여로 제1저자로 등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연구생 D씨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polymorphisms(다형성)이란 전문 용어들을 알고 논문을 썼다는 말인가”라며 “(과거) 수 명의 고등학교 학생을 인턴으로 데리고 실험을 시켰고, 하버드·콜롬비아 대학교 등으로 보내 의사가 됐지만 제1저자로 논문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E씨 역시 “과학고생도 자기들이 2달 동안 뭐하는지도 모른 채 돌아갔는데 외고 학생이 2주 동안 다 이해하고 논문을 과연 썼을까”라며 “고등학생이 쓰는 영어랑 논문 영어랑은 천지 차이다”라고 주장했다.

실험 난이도 자체가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공계 박사과정을 밟으며 5년간 매번 인턴들을 받아 가르쳤다는 F씨는 “환자 샘플에서 RNA(리보핵산)과 DNA뽑고 실험을 할 타깃을 정하고 유전자 검사를 준비하는 데만 6주가 간다”며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연구하고 졸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는 분들은 정말 분노할 일이고 이공계 박사로서 현 상황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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