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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학벌 대물림’ 노린 교수들의 '논문 저자 끼워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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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북대학생들이 19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 학생회관 앞에서 비리교수 징계 및 재발방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미성년 자녀 논문 공동저자 등재, 자녀 입시 비리, 장학금 횡령 등의 의혹을 사고 있는 교수에 대해 대학본부의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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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A교수는 고등학생이던 자녀 2명을 자기 논문 5건에 공저자로 이름 올렸다. 자녀 1명은 대학 진학 후에도 논문 3건에 공저자로 등재했다. 두 자녀는 2015·2016학년도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전북대에 입학했다.

두 자녀의 교과성적은 중위권 정도였지만 서류 평가 결과는 최고점이었다. 교육부는 이들의 평가 과정에 이들 논문이 영향 줬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학교 측은 지난 7월 A교수를 징계하고 두 자녀의 입학을 취소키로 했다.

고교생 때 의학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미성년자인 자녀나 친지를 논문 공저자에 넣는 교수들의 ‘끼워 넣기’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엔 본인이나 동료, 선후배의 연구실적을 위해 논문에 기여하지 않은 연구자를 올리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젠 전북대 A교수처럼 고교생 자녀·친지의 입시를 위해 공저자로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2010년 전후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에 따라 상위권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 사이에서 논문 실적이 중요한 ‘입시 스펙’으로 꼽히면서부터다.

교육부는 지난 5월 2017년부터 1년 6개월간 교수·연구자를 대상으로 미성년자를 공저자로 올린 대학 논문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53개 교수 102명이 논문 160편에 본인의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이름 올린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 중 서울대·포스텍·가톨릭대 등 7개 교수 9명은 논문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않은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했다고 판정받았다. 포스텍 B교수는 미성년자 자녀를 논문 제1저자로 올렸다가 적발됐다. 교수는 자녀가 전체 개요와 참고문헌을 정리하고 영문 교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학은 연구에 대한 실질적 기여가 낮아 제1저자에 적절치 않다고 ‘부당한 저자 표시’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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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C교수의 논문 3건은 고교생 자녀를 공저자로 들어나 연구 부정으로 판정됐다. 교수는 해당 논문들이 자녀의 학교 연구과제 프로그램 일환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자녀의 연구 과제와 해당 논문의 내용은 달랐다. C교수는 자녀가 논문 가설을 세우는 데 기여했고 쥐 실험에 약품을 투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도 주장했지만, 학교와 교육부는 공저자 자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자녀를 논문 저자에 끼워 넣는 주된 원인은 학벌의 대물림이다. 교육부 조사 결과 B교수의 자녀는 미국의 유명 공대, C교수의 자녀는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에 들어갔다. 연구 부정으로 판정된 논문에 이름 올린 교수 자녀 10명 중 6명은 해외 대학, 나머지 4명은 서울 소재 사립대에 진학했다. 입시업체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제가 중심인 해외 명문대를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논문을 필수적으로 여겼다. 국내 대학도 2010년 전후부터 대입 반영 금지된 최근까지 최상위권 학생·학부모에겐 합격을 보장하는 스펙으로 통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실태조사에선 자녀가 아닌 미성년자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사례도 389건이 발견됐다. 이들은 조 후보자 딸의 사례처럼 지인이나 동료의 부탁으로 논문 연구나 저자에 참여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교육계 인사들의 의견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이중엔 과학고 등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대학-고교 연계프로그램의 결과도 있지만, 적지 않은 양은 친척이나 지인 부탁으로 이름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 학부모의 과열 경쟁, 그리고 사실상 학교와 인맥에 좌우된다는 비판이 심해지자 교육부는 뒤늦게 2014 대입에선 논문 실적의 학생부 기재를, 지난해 대입부터 자기소개서 기재를 금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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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교육부 대학학술정책관이 지난 5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대학 연구윤리 확립 및 연구 관리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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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같은 미성년자 논문 저자 끼워 넣기의 실태가 제대로 밝혀진 건 아니다. 2017년부터 교육부가 연구 윤리 제고의 차원에서 실태 조사에 나섰으나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논란이 된 조 후보자 딸이 제1저자로 올린 의학 논문처럼 학교의 1차 조사에서 누락된 경우도 많다. 대학의 제출 자료에서 누락되면 현황 자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미성년자가 논문 저자로 들어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고 해도 윤리 부정을 판단해 징계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교육부의 연구 윤리 확보 지침에 따르면 연구 부정을 조사하고 판정하는 기관은 해당 연구자의 소속기관인 대학이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들은 이에 소극적이다. A교수의 징계와 두 자녀의 입학 취소를 결정한 전북대의 경우 애초 미성년 공저자 논문이 없다고 보고했으나 교육부의 감사 결과 교수 자녀 공저자 논문 9건이 발견됐다. 소속·이름을 밝히길 원하지 않은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교수는 “교수 본인이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학교 측이 공저자로 올라있는 미성년자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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