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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1만8000㎞ 대장정… 분단에 잘린 길 돌아 위안부·세월호·518 아픔을 끌어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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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4돌기획] ‘3·1운동 100년, 평화통일 기원’ 유라시아 횡단 마무리 여정 동행기

강제이주 고려인·동포 주축 랠리단에 열리지 않은 북한길

나눔의 집, 세월호 추모공원 부지 방문 “꼭 기억할 아픈 역사”

5·18 묘역 참배 뒤 땅끝 마을에서 “코리아 우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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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 기원 오토랠리’ 차량들이 목적지인 해남 땅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세종/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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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건너 평양을 통과해 해남 땅끝까지 계속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반도 진입로인 러시아 연해주 하산과 북한 나진을 잇는 철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러시아 모스크바부터 1만6500㎞를 달려온 ‘3·1운동 100주년, 평화통일 기원 오토랠리’ 단원들은 북한 땅을 눈앞에 두고 분단의 현실을 실감했다. 남북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한반도는 섬나라에 불과했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주최한 랠리의 마지막 여정에 <한겨레>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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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3.1운동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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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거리를 23시간 돌아갔다

“랠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북쪽의 최후통첩에 실낱같은 희망은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사흘 뒤 받은 비보였다. 랠리 단원들은 종착지를 1300㎞ 앞에 두고 길이 끊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다. “반쪽짜리 모국 방문은 의미가 없다”며 짐을 싸 러시아로 돌아간 고려인도 있었다.

최후 방편으로 랠리 단원 23명은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강원도 동해항으로 가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평양을 달리고 있어야 할 시간에 배에 탄 단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제10호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선상은 거세게 출렁였다. 고려인 3세 김올레그(50)는 해안선 너머 북한 땅을 보며 “너무 아쉽다. 이게 (분단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육로로 6시간이면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배로 23시간을 이동한 후에야 남한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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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세월호 피해자를 만나다

랠리 차량은 17일 물안개 핀 소양강 댐의 절경을 옆에 끼고 구불구불 도로를 달렸다. 랠리단의 주축인 고려인과 재외동포들에게는 평생 꿈꾸던 모국의 풍경이었다. 첫 목적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사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이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20명뿐이고, 이 중 6명이 나눔의 집에서 지낸다.

고려인과 할머니들의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동명이인의 이옥선 할머니 두 분이 모국을 찾은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의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할머니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각각 대구와 부산에서 10대의 앳된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연해주 지역에 살던 고려인들은 이보다 조금 앞선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일본군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황무지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독립운동의 성지인 하얼빈과 연해주를 통과해 한반도에 도착하는 대장정에 나선 것도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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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랠리 참가자들이 17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큰절을 하고 있다. 경기 광주/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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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2세인 김에르네스트(60) 랠리단장은 대구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에게 “러시아에서 왔다. 꼭 만나고 싶었다”고 인사했다. 이 할머니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고려인들은 서투른 한국말로 “건강하오”라고 말하며 할머니들에게 큰절을 했다. “돌아가서 돈 많이 벌어”라는 이 할머니의 덕담에 단원들의 웃음이 터졌다. 랠리에 함께한 유은재(58) 동대문고려인한글학교장은 “할머니들 건강을 걱정했는데 정정하셔서 안심이 됐다. 위로하러 온 우리가 오히려 힘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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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랠리 참가자들이 17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얼굴이 그려진 펼침막을 보고 있다. 안산/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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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단은 같은 날 경기 안산으로 이동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이들에게는 세월호 참사 역시 꼭 기억해야 할 고국의 아픈 역사였다.

단원들은 4·16 세월호 생명안전 공원이 들어설 화랑유원지에서 ‘시연 엄마’ 윤경희씨를 마주한 순간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참사 6일째 시연양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물 밖으로 나온 사연과 유가족들이 아직도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고려인 2세 장라리사(61)는 “우리 동포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서도 재발해서는 안 될 아픈 역사”라고 말했다.

랠리 단원들은 한국 여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갈 때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달리겠다고 유가족과 약속했다. 희생자 304명의 영정 앞에 묵념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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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랠리 참가자들이 19일 오후 광주 5·18민주화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광주/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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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아픔을 넘어 해남 땅끝에 서다

랠리 차량은 최종 목적지인 해남 땅끝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거쳐 세종 대통령기록관도 둘러봤다. 이곳에서 군사독재 시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란 아픈 역사를 대면했다. 고려인 3세 최레오니드(51)는 “독립운동과 4·19혁명, 2017년 촛불 탄핵 모두 우리 동포들이 이뤄낸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했다.

광주 5·18민주화묘역에서 단원들은 종착지가 130㎞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쁨을 잠시 억눌렀다. 묘역을 참배한 뒤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비석 앞에 섰다.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최근 홍콩뿐 아니라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의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려 익숙한 노래였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노래 하나가 각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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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랠리 참가자들이 20일 최종 목적지인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해 각 국의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해남/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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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국경에 설치된 ‘월경 금지’ 표지판 너머로 북한 나진 땅이 보인다. 훈춘/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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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랠리 단원들은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진 대장정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북쪽 길이 막히고, 위안부, 세월호, 5·18을 접하며 어두웠던 고려인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장상락 동북아평화연대 랠리 집행위원장은 “42일 동안 8번의 국경을 넘어 1만8000㎞를 달린 기록적인 랠리가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한반도의 아픔을 위로하는 도전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들과 랠리 참가자들은 땅끝마을을 상징하는 비석 앞에서 북쪽 땅을 바라보고 “코리아 평화통일, 코리아 우라(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이들은 25일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러시아 육로를 달려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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