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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CEO 칼럼]​농업환경 보전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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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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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모내기철이나 가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땅속에서 나오는 물을 논 가장자리 웅덩이에 모아 유용하게 사용했다. 도시민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를 시골에서는 '둠벙'이라 부른다.

둠벙은 농사에 도움이 되는 요긴한 수자원인 동시에 작은 수서생물들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 이 생물들이 여름철에 해충과 잡초를 방제하는 일꾼이 되도록 길러내는 역할도 했다. 아울러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는 친구들과 올챙이, 송사리, 물장군 등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둠벙의 활용 이외에도 오랜 경험 속에서 자연을 활용한 농사방법을 터득했다. 지력 유지를 위해 영농과정에서 생산되는 소똥·짚 등을 토양에 환원하는 등 자연과의 조화, 물질순환의 원리에 따라 농사를 지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환경과 생태계 등을 보전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농촌까지 밀어닥친 근대화 물결은 조화와 순환의 생태계 대신 효과가 빠른 농약과 화학비료로 빠르게 대체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농촌의 토양·수질·생물다양성 등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국민들도 미래의 농업·농촌을 단순히 식량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환경보전과 문화·복지의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농지의 질소 수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4배, 인 수지는 8.6배에 이르는 등 농약과 비료 중심의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농업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고자 2017년부터 전담팀 운영과 현장 실증연구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농업환경 보전 프로그램' 사업을 전국 5개 농촌지역에 도입했다. 이 사업에 따라 마을별 주민들과 공동체 스스로 비료와 농약 적게 쓰기, 논 주변 둠벙 만들기 등 농업환경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신규사업지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선진국에서는 농업생산 활동에 따른 환경오염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1980년대부터 이미 관련 정책을 도입했고 투입 예산도 상당하다.

영국에서는 '넓고 얕게(Broad and Shallow)' 원칙에 따라 이행의무를 완화하는 대신 많은 농업인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농업인 컨설팅과 현장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전문지원조직을 설치하는 등 농업인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미국의 경우 2018년 한해 관련 정책에 투입된 예산이 우리 돈 약 6조원에 달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예산 지출을 수반하는 신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납세자의 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농업과 환경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공동체 차원에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는 사회적 토양이 준비되어야 정책이 뿌리 내릴 수 있다. 환경보전, 식량안보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6조~9조원으로 추정한 연구결과를 곱씹어볼 만하다.

아프리카 격언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농업환경 보전문제도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해 재정당국·농촌진흥청·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앞장서고, 농업인과 국민이 이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 '농업환경 보전 프로그램' 사업의 첫걸음에 농업인, 국민 여러분 및 관계기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이해곤 기자 pinvol1973@ajunews.com

이해곤 pinvol197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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