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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비행기 타고 온 와인, 배 타고 온 와인… 왜 맛이 다를까[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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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인의 경제학 같은 와인, 다른 맛
비밀은 '온도'
동일한 브랜드·빈티지 분명 같은 와인인데… 해외 현지에서 사온 와인이 더 맛있는 이유
유럽에서 부산항까지 보통 배 운송 30~40일 걸려..컨테이너 안은 100도 육박
본연의 맛 변하는건 당연 ..그래서 고가 와인은 항공으로
와인 생산지 인근 로드숍이 와이너리보다 되레 저렴하고..의외로, 면세점에서 사는 건 공항서 환전하는 것처럼 비싸


"이번에 이탈리아 가는데 와인 사다줄게. 형부가 원하는 와인, 사진으로 보내줘."

유럽을 오가며 여행가이드 일을 하는 제 처제는 저에게 이런 문자를 자주 보냅니다. 평소 와인을 자주 즐기는 저에게는 처제의 얼굴을 보는 것만큼이나 너무도 반가운 문자입니다. 처제가 해외 현지에서 직접 사오는 와인은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습니다. 우선 국내보다 크게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다양하고 품질좋은 와인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유통되는 신선한 와인의 맛을 국내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항공기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큰 온도변화를 거치지 않고 가져오니 현지에서 느끼는 그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와인 매니아들은 해외에서 직접 가져오는 와인이 더 맛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여행이나 출장길에 유럽이나 미국 등을 방문하게 되면 와인 한두병은 꼭 사서 들어옵니다. 심지어는 친한 지인이 해외에 나갈때 와인을 대신 구매해 달라고 부탁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해외 현지에서 직접 가지고 오는 와인이 좋은 것일까요.

파이낸셜뉴스

피렌체 시내 아노르강변에 있는 시그노르비노 와인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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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운송땐 온도관리가 중요

"유럽 현지에서 유통되는 와인과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와인은 전혀 다른 와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브랜드, 같은 빈티지인데도 맛이 전혀 다른 와인이라는 거죠. 항공으로 운송되는 아주 고가의 와인을 제외하고는 현지의 맛과 분명히 다릅니다." 수개월 전 한 대형할인점의 와인매장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십년 가까이 와인만 공부했다는 그녀는 "와인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며 "배를 이용해 일반 컨테이너로 운송하는 와인은 죽은 와인"이라고까지 표현하더군요.

와인을 보관할때 가장 중요한게 '온도 관리'입니다. 레드와인의 경우 섭씨 12~14도, 습도 60~70%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 햇볕 등 강한 빛과 진동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와인을 배로 운송하게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럽에서 와인이 우리나라로 들어올때는 지중해를 거쳐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지나 아라비아해로 내려옵니다. 이후 인도양에 들어서면 적도 근처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이동해 말레이시아 말라카 해협을 거쳐 북동쪽으로 방향을 튼 후 부산항에 들어오게 됩니다. 보통 30~40일 걸리는 긴 여정인데 가장 큰 문제는 수에즈 운하를 거치자마자 만나는 아라비아해 지역의 온도가 섭씨 50도 안팎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외기 온도가 그 정도인데 컨테이너 내부 온도는 거의 100도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와인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쉽게 짐작이 갑니다.

그나마 냉장시설을 갖춘 레퍼컨테이너(Refeer container)가 있지만 이용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한달이 넘는 해상운송과 육상운송 기간동안 제너레이터를 계속 가동해야야 돼 일반 운송비용보다 4~5배가 듭니다. 이 때문에 중고가의 와인만 이 컨테이너를 활용하고 국내 소비자가격 10만~15만원 이하 와인은 그냥 일반 콘테이너로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내 수입사들은 최대한 한여름을 피해 운송을 하고 컨테이너도 배의 바닥에 위치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갑판의 상단이나 엔진룸 근처에 위치하게 되면 한 여름이 아니어도 와인이 끓어넘칠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중저가 와인을 구입할때 반드시 와인 병목에 있는 포일을 돌려보고 사라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지중해와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컨테이너선들의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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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로드숍서 산지 와인 사세요

이런 이유 때문에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해외에서 직접 가져온 와인을 아주 좋아합니다. 해외에서 직접 구입한 와인은 현지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 말고도 국내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잇점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술에 엄청나게 많은 세금이 붙기 때문에 같은 와인이더라도 현지에서는 국내 가격의 반값 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입니다.

해외에서 와인을 구입하기 가장 좋은 곳은 해당 산지에 있는 시내의 로드숍입니다. 와인의 구색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와인의 상태도 좋습니다. 또 산지와 가까워 물류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와이너리를 방문해 직접 구입하는 것은 가격적인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물류 시작점에서 사기 때문에 가장 저렴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시내 로드숍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와이너리는 대량으로 도매상에 넘기는 가격과 일반 소매가격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면세점은 제일 안좋은 선택지입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금이 붙지않는 구역이라 와인가격이 저렴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주 극히 일부 와인을 제외하고는 가장 비싼 곳입니다. 국내에서는 주류에 세금이 많이 붙지만 해외에서는 세금이 많지 않아 면세 매력이 적은데다 자릿값이 더해져 와인 가격이 아주 비쌉니다. 거의 국내 가격과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면세점은 자체 셀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고 전문적인 관리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와인의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동네 와인가게에 의외의 행운도

해당 산지에 있는 동네의 작은 와인가게를 들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건질수 있습니다. 이런 곳은 가게가 작다보니 회전율이 느리지만 생산량이 적은 희소성 있는 고가의 와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물론 가격도 저렴합니다. 다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가를 꼭 살펴야 합니다. 와인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세워져 있거나, 태양광에 노출되는 곳에 있거나, 온도변화가 큰 곳에 위치해 있다면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여름 휴가차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역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유명 관광지의 작은 와인가게에서 토스카나 최고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인 '솔데라'가 있었는데 가격이 예상외로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보관상태가 나쁘지 않았지만 워낙 가게가 작아 시내로 들어가 큰 로드숍에서 사는게 낫겠다는 마음에 그냥 나왔습니다. 그러나 시내에서 그 와인을 찾으니 워낙 생산물량이 적어 현지에서도 구하기가 쉽지않은 와인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작은 가게에서 샀어야 하는 것이었죠.

■국내엔 없는 좋은 와인 골라보세요

해외에 나가보면, 특히 유럽의 경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와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국내에 많이 소개된 와인보다 현지에서 마셔보고 인상깊었던 와인을 고르거나, 현지 매니저가 추천하는 와인을 고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로 30유로(4만원) 안팎이면 아주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와인을 구입하는 장점 중 하나가 국내에서 보기힘든 그레이트 빈티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여러 종류의 빈티지가 전시돼 있어 빈티지를 비교하면서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빈티지보다는 어린 빈티지를 고르는게 현명합니다. 대부분의 와인숍이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와인의 관리가 잘되고 있지만 와인에 문제가 있을 경우 환불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빈티지도 잘 살펴야 합니다.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등 신대륙의 경우 햇살이 워낙 좋아 비교적 품질이 고르지만 상대적으로 햇살이 풍부하지 않은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스페인의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와인은 빈티지를 확인하면서 사야 좋은 와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선임기자

▶다음 편은 '<4부>와인의 역사-와인에 취한 인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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