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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용마씨 이제 우리가 방송 바로 세울테니 편히 쉬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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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 대해서건 바른 말 한 기자

언론장악 맞선 운동가이자 지략가

‘정치 휘둘리지 않는 방송’ 꿈꿨죠


[가신이의 발자취] 이용마 기자를 보내며

한겨레

최승호(왼쪽) <문화방송> 사장이 재작년 리영희상 시상식에서 이용마(오른쪽) 기자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제공


이용마 기자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전라북도 전주 출신으로 좀 느긋한 말투로, 그는 늘 한치도 어김이 없는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무엇에 대해서건 누구에 대해서건 바른 말을 했습니다. 언론인들이란 남에 대해서는 말을 잘 하지만 내부 동료들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안과 밖을 같은 잣대로 이야기했습니다.

1996년 <문화방송>(MBC)에 들어와 여러 부서를 거치며 기자로 크는 동안 그는 선배들의 불편한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자로서 그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고, 그 세상을 이룰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외에서 자행되는 외압과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용마 기자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누구도 선뜻 가려하지 않던 노동조합 집행부의 길이었습니다. 어렵게 노력해 낳은 쌍둥이 아이들이 겨우 세살 때였습니다. 2012년 엠비시 노조가 전면적인 파업에 들어가고 긴 시간 동안 싸울 수 있었던 데는 이용마 기자의 열정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는 맹렬한 운동가였고, 지략가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고 이용마 기자는 해직됐습니다.

“우리 싸움의 의미는 뭐지?”

2016년 겨울, <공범자들>을 제작할 때 그에게 물었습니다. 함께 해직돼 만 4년 동안 엠비시를 되찾겠다고 싸워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이용마 기자는 병을 얻었고 야윈 얼굴로 시골 요양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싸움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늦둥이 쌍둥이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살가운 아빠로 살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그 때 그는 아이들에게 유언처럼 남길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물론 십 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싸웠던 많은 사람들의 청춘, 인생 그거 다 날아갔어요. 뭐 그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봐요. 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적어도 그 기간에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

그 인터뷰 얼마 뒤 그는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에서 그는 ‘침묵하지 않고 싸우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방송을 바로 세우는 것, 특히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첩경임을 역설했습니다.

한겨레

이용마의 열정에 대한 시민들의 감동과 호응,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엠비시를 되찾게 된 가장 큰 동력이었을 겁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 엠비시 사람들은 좋은 방송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시민들의 신뢰를 되찾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문병 간 저에게 용마씨가 가끔 아쉬움을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러니까 자네가 빨리 나아서 좀 해봐’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요.

저는 때로 이용마 기자가 그 훤칠한 모습으로 엠비시를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엠비시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방송될 때, 시민들이 ‘다시 엠비시가 돌아왔구나’라고 느끼지 않을까 꿈을 꾸곤 했습니다. 그와 나의 간절한 꿈이 어느 날 기적처럼 그의 몸을 살리고, 또 엠비시를 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떠났습니다. 우리는 남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화두를 받아 들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더 좋은 방송 만들겠습니다. 용마 씨, 잘 할게. 부디 편히 쉬게나.

최승호 <문화방송> 사장,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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