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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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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막는 일본…민주주의 억압 당연시하면 독재로 귀결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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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아이치트리엔날레 검열’ 토론회

“우경화 흐름 속 전시 중단 ‘신속’…한·일 문화교류 또 봉쇄 위험”

“정치적 가성비 높아 검열 통한 ‘논쟁적 예술작품’ 지목하고 공격”

경향신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 검열 사태를 계기로 22일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위협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쓰다 다이스케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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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벌어진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사태는 현재 우경화된 일본 사회의 여러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한국에서도 보수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낯설지 않다. 예술 검열의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이어진다.

문화연대는 22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의 검열 사태를 계기로 ‘위협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애초에 외부 반발로 전시장에서 철거된 이력이 있는 17개 작품을 모은 기획전이다. ‘위안부’ ‘천황제’ 등 일본 사회가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뤘다. 지난 4일 주최 측에서 소녀상 코너를 가벽으로 막아버리면서 전시 의도대로 ‘표현의 부자유’를 상황적으로 폭로하는 꼴이 돼버렸다. 전시 중단의 표면적 사유는 외부의 협박 전화와 전시장 안전 문제였다. 하지만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것”(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보조금 교부 결정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정밀히 조사한 뒤 적절히 대응하겠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 압박성 발언이 이어지면서 국가의 ‘검열 사태’로 비화됐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평화의 소녀상과 아베의 극우 강권통치’ 발제를 통해 이번 검열 사태의 근본적 배경을 일본의 우경화 흐름으로 진단했다. 일본의 과거사 부정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2015년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집약돼 있다.

이 교수가 주목하는 지점은 스가 장관과 가와무라 시장의 발언이 있은 뒤 전시 3일 만에 소녀상 전시가 중단됐다는 ‘신속성’이다. 쓰다 다이스케 아이치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전시 중단 이유로 “한·일관계 악화, 정치인의 개입 외에 전시 2주 전 발생한 교토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의 영향”을 꼽았다. 이 교수는 “이런 식이라면 한·일 간 어떠한 문화예술적 교류도 상황논리에 따라 봉쇄될 위험이 있다”며 “예술감독의 역할은 정치인의 무분별한 개입을 논리적으로 방어하면서 전시 의도를 시민과 여론을 통해 설득해 나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자 시민적 기본권이기 때문에 집권세력과 그들의 지지 대중이 정치적 이유로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당연시되면, 그것의 결과는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검열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 현상이다.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예술행정과 검열의 정치: 아이치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블랙리스트’에서 예술 검열의 핵심은 ‘권력에 의한 침묵’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에서도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 박근혜·박정희·김기춘 등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거센 논란이 됐을 때,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이 “시 예산이 들어간 비엔날레에 정치적 성격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발언하고, 광주시가 교부금 회수 ‘협박’까지 하면서 결국 작가가 전시를 자진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예술인 블랙리스트’ 전모가 드러나면서 당시 검열도 동떨어진 맥락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왜 국가는 검열에 나서는 것일까. 예술이 사람들의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생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검열을 통한 예술작품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 ‘가성비’가 높다”며 “이번에 일본 정치인이 말한 ‘감정’의 원인으로 평화의 소녀상과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지적됐지만, ‘논쟁적인 예술작품’을 대중의 시선과 접근으로부터 차단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평화의 소녀상이 ‘논쟁적인’ 이유는 그것이 다루고 있거나 놓여 있는 정치적 상황 때문”이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논쟁적인’ 정치적 상황을 정면으로 타개하는 것이지 예술 표현과 공론장의 봉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갈등은 진행형이지만, 희망은 확산하고 있다. 오키나와 조각가 긴조 미노루는 항의 행동으로 ‘위안부상 제작 선언’을 했고, 전 지구적으로 ‘소녀상 되기’ 릴레이도 퍼지고 있다. 검열 사태에 반대하는 시민들 서명도 일본에선 이례적으로 3만명을 넘어섰다. 김운성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 제작 의도와 달리 일본에선 반일의 상징처럼 여겨져 이번 기회에 일본 시민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는 기대를 했고, 실제로 전시 사흘 동안 관람객들이 작품을 소중히 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예술감독과 전시기획자도 참여했다. 쓰다 예술감독은 전시 중단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 “평화의 소녀상이 놓인 맥락을 미술관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하기 위해 전시를 했고, 작품을 본 사람들도 부정적 인상이 바뀌었다는 반응을 전했다”면서 “현재 표현의 자유가 희생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카모토 유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실행위원은 “표현의 자유는 작품과 작가, 관객 모두의 소통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일방적으로 떠드는 ‘헤이트스피치’도 무력화할 수 있다”며 “이대로 전시가 막히면 우익들에게 힘을 더해주고 일본 사회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전시가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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