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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8)간병살인 등 극단 선택 막으려면…‘존엄한 죽음’ 공론화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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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의사조력자살 넘어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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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간병하는 가족들의 힘든 나날을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

종교계 등의 반대 예상되지만

이해관계자 모여 출구 찾을 때

완화의료 윤리지침 등

의료현장 점검·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 정비도 병행해야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나아가

안락사·의사조력자살 선택을

합리적으로 보장할 법률 필요


지난 7월29일 부산에서 79세 남자가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장판막증을 앓은 아내를 20년 동안 간병해 오다 3개월 전 말기 판정을 받았다. 대학병원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퇴원시켰다.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내가 요양병원에 있기를 거부해 자택으로 돌아왔다. 말기 판정 이후 아내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입퇴원을 수차례 반복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와 간병하는 자식들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도로 지친 남편이 ‘간병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같은 달 24일에는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 치매를 앓는 80대 어머니와 노모를 돌보던 50대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4월22일 전북 군산에서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7년간 돌보던 80대 남편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2월에도 충북 청주에서 치매를 앓던 85세 아버지를 10년간 돌봐온 40대 아들이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반자살’이 있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2017년 8월에는 호스피스 제도가, 2018년 2월부터는 연명의료결정이 시작되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연명의료결정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존엄한 죽음이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세계 사건들

7월11일, 프랑스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랑베르가 사망했다. 2008년, 당시 31세였던 랑베르는 교통사고를 당해 뇌가 손상됐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6년 동안 호전되지 않자 아내와 형제들은 그의 평소 의지에 따라 수분과 영양 공급을 중단하려 했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아들의 생명을 지키겠다며 소송을 걸어 가족 간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오랜 논란 끝에 의료진 판단으로 수분과 영양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병원은 랑베르의 수분과 영양 공급을 끊었고 9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테리 시아보(Terri Schiavo)’ 사건이다. 10년 이상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종교단체, 미국 의회와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서 15년을 보냈던 그녀는 2005년 미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분과 영양 공급이 중단돼 1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사건은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식물인간처럼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적 죽음보다 먼저 생명을 마치게 하는 행위이다.

2018년 7월에는 영국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의 가족과 의료진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 모두 동의할 경우 별도 법원 승인 없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인권보호조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그동안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가족과 의사가 동의하더라도 최종적인 연명의료 중단은 법원에서 결정했었다. 환자 가족이나 의료인 간에 견해가 다를 때는 여전히 법원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2018년 5월, 104세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했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식물인간이나 말기 환자에게 치명적인 약을 제공하여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을 도와주는 행위를 말한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이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으며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사회에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와 생명의 존엄성, 인간적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벨기에는 최근 치매환자로까지 안락사를 확대하고 있다.

■ 의사조력자살을 예약한 한국인 107명

2019년 3월6일자 서울신문 취재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 2명이 이미 의사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107명이 의사조력자살단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불법이다. 2008년 세브란스병원의 김할머니사건 이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수분과 영양 공급은 지속되어야 한다. 흔히 ‘존엄사’를 허용한 법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존엄사법이다. 프랑스에는 임종과정에서 연명의료 중단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통증을 조절하면서 숙면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하는 존엄사법이 있다. ‘존엄사법’이라 하지만 나라마다 다르게 쓰인다.

언젠가 먼 이국의 땅으로 떠나 삶을 마감하고 묻히기를 희망하는 한국인 107명의 고뇌와 희망을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자문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여정이 고문과 같은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절망감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낯설고 차가운 병실 침대에서 갓난아이처럼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으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신체를 다 드러낸 채 내맡겨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삶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까지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우리는 그 짐을 그들에게만 지운 채 모른 척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은 동물적 존재를 넘어서 정신적, 사회적, 실존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독립성을 지켜왔고 자율성과 자존감으로 살아왔던 시절을 뒤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를 거부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일 수 있다. 선택을 합리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출구 없이는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최근 서울신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80% 정도가 안락사에 찬성했다. 삶 자체가 고문인 상황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비참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한국에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거나 가족이 살인죄나 자살방조죄로 처벌받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107명이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먼 스위스가 아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한국이어야 한다. 생명존중이라는 명분으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한국 사회도 이제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서둘러 답을 찾아주기 위해 공론화할 때다.

물론 종교계와 일부 윤리학자는 반대할 것이다. 실존적인 환자 개개인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한다”며 생명의 가치나 종교적 이유로 강요하기보다는 그의 삶에 대한 가치관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고통이나 간병 부담만이 아니더라도, 삶이 정리되고 가족들과 작별의 시간도 가져 신에게 돌아갈 준비가 되었기에, 남은 시간이 무의미한 사람들에게 교리나 신의 뜻만으로 반대한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한번 허용하면 경계가 없어져 자칫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지는 ‘미끄러운 언덕’을 염려할 수 있다.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의견 대립은 피할 수 없다. 프랑스, 미국, 영국, 스위스 등의 나라들이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거나 양심과 도덕이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소극적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한 여러 나라들에서 문제가 생겨 범위를 축소하거나 폐기한 적이 없으며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자기 선택권을 존중하는 나라이며 치열한 사회적 논의와 대법원 판결 등의 과정을 거쳤다. 질병, 우울증과 삶의 무의미함으로 인한 자살을 막을 수 없다면,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환자단체, 의료계, 종교계, 사회학자, 윤리학자와 정부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우리 사회의 성숙이나 종교적, 철학적인 담론 그리고 대책들에 대해 진지하되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 필자는 지금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반대한다. 시기상조다. 그러나 10년, 20년 내 한국에서도 말기환자나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가족이 안락사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될 것이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이 문제에 직면할 수는 없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 서둘러야 할 의료·사회적 사전 조치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서둘러야 할 사전 조치들이 있다. 의료현장을 비롯한 사회 전체적인 해결방안의 모색과 참여가 필요하다. 먼저 완화의료 윤리지침, 의료진의 훈련, 공공의료 강화 등 의료현장의 개선이다.

미국드라마의 일종인 <하우스 오브 카드>나 <지정생존자>를 보면, 치료되지 않는 진행암으로 통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요구에 딸이 마약성 진통제로 안락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살 원인 가운데 ‘육체적 질병’ 문제가 가장 많으며, 정신 질병 문제, 경제생활 문제 순이다. 지속적인 통증은 삶을 붕괴시킨다. 환자들의 통증과 우울증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거나 치료비 부담 때문에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이 야기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모르핀 등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03년 보건복지부암환자통증관리위원회를 구성해 통증관리지침, 속효성 모르핀 생산, 급여 확대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 후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한번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과다하게 쓰면 호흡곤란으로 사망의 위험도 있지만 환자의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약물이다.

통증 관리와 죽음에 관한 의사들의 임상적, 윤리적 역량 진단과 훈련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 의료진만이 아니라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임상윤리전문가, 성직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생명경시나 과도한 의료 집착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와 함께 의료현장을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생명과 죽음에 관련된 사회보장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로 질병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 여전하다는 것이 현장 의사들 이야기다. 개인과 가족에게만 삶의 고통과 간병 책임을 떠넘기고 죽음을 앞당기게 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크다. 국민들이 자기결정권과 생명존중의 딜레마에 빠져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점검하고 고쳐야 한다. 치료비와 간병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한계에 이르렀을 때 개인과 가족의 부채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구제제도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 재정 지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기부나 자원봉사도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이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 꼭 안락사나 조력자살일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지금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물론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면서 신뢰가 구축될 경우 한 걸음 더 나아간 의사조력자살을 법에 포함시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에만 초점을 맞춰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의사조력자살을 위한 선택을 합리적으로 보장하는 법률과 함께 어려움에 처해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사회적 돌봄과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예방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자율적 선택의 문을 열어놓되, 희망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문제를 국민들이 함께 해결함으로써 아무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선택을 위한 상담과 해결을 통해 간병살인과 자살이 줄어들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자살이 줄어드는 효과도 보였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프랑스, 미국, 스위스처럼 소극적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게 될 때까지 대책 없이 수수방관할 것인가?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해 수용 가능한 조건과 절차 등 방안을 모색할 것인가? 한국 사회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향후 10년 내지 20년 동안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 국민의 존엄한 죽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할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는 의료계, 종교계,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 등 관계자들과 함께 우리 문화와 정서에 합당한 ‘한국인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라. 사회적 여건,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둘러 나서라. 대한민국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는 우리 국민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우리 국민 누구에게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출구가 안락사나 조력자살일 필요가 없도록.

▶윤영호 교수는

경향신문

중1 때 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본과 4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호스피스를 알게 되어 호스피스를 전공으로 택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마쳤다. 2000년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 삶의질향상연구과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옮겼으며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다. 최근 설립된 웰다잉시민운동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영호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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