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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현장에선] ‘日 양심’ 아라이 교수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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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아라이 신이치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를 한번 본 적이 있다. 2014년 12월 한 기관의 초청을 받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였다.

“한일협정 50주년을 기념해 (도쿄국립박물관이 갖고 있는) 오구라컬렉션을 돌려준다면 한·일 관계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보다야 나았지만 당시도 아베 정권의 우경화로 한·일 관계가 상당히 나빴는데, 아라이 교수는 대표적인 약탈문화재로 꼽히는 오구라컬렉션의 반환이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밝혔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을 “쇄국정책으로 가는 것 같다. 나치의 분위기를 방불케 한다”고 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세계일보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아라이 교수의 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그의 책 ‘약탈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나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일제의 한국 문화재 약탈, 파괴의 실상을 증언했다. “문화재 약탈이 군과 일체가 되어 국가적 사업으로 구상되었다”, “한국에서의 철도 건설은 일본의 패권주의적 대국화를 위한 핵심적인 문제였다”, “위대한 국민에게서 빼앗은 유산 중 최대 규모이며, 또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공적 약탈일 것이다” 등은 그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쿄대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한 아라이 교수는 제국주의와 2차 세계대전, 전쟁책임 등을 연구했고, 1993년에는 ‘일본전쟁책임자료센터’를 만들어 대표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2차대전 가해책임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한국·조선문화재반환문제연락회’,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 등도 이끌며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다. 아라이 교수는 2017년 10월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파탄이 난 요즈음, 그를 다시 떠올리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약탈문화재의 환수 역시 양국이 풀어야 할 과거사 문제의 쟁점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다. 강제징용자 배상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문화재 약탈은 없었으며,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할 일은 다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라이 교수가 언급한 오구라컬렉션과 같은 약탈문화재들이 일본에는 상당히 많다. 지금 약탈문화재까지 언급하며 전선을 넓힐 수야 없겠지만 이런 사실을 기억하며 끈질기게 요구할 때 언젠가는 반환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일본 내 양심세력 존재의 의미다. 광복 이후 일본 정부는 강점기의 만행에 대해 진심 어린 반성과 실질적인 배상을 거부해 왔지만, 언제나 그런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양심세력은 있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국면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소수이긴 해도 그들의 존재는 우리가 ‘NO 재팬’이 아닌 ‘NO 아베’를 이야기할 강력한 근거다. 언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한·일 관계는 풀릴 것이고, 진정한 화해를 위한 조건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 한국과 일본 모두 아라이 교수로 대표되는 일본 내 양심세력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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