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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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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김경민 지음/을유문화사·1만6000원

영국박물관의 방대하고 진귀한 전시물들은 인류 문명사를 축약한 타임캡슐 같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품은 로제타석,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키루스 실린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 부조, 9세기 중국 둔황 석굴의 금강경, 18세기 인도 술탄의 목각 ‘티푸의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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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복전쟁에는 살육과 파괴, 약탈이 뒤따랐다. 승자의 ‘전리품’은 사람과 재물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나긴 인류사에서 ‘문화재 약탈’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극히 최근이다. 역사적 유물을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 자체가 혈통·언어·역사 등 동질의 정체성에 기반한 국민국가가 보편적 국가 형태로 굳어진 19세기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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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와 고고학을 공부한 김경민은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에서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를 보여준다. 유럽이 ‘고대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과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 과정에서 ‘국가적 기획’으로 실행된 문화재 ‘수집’의 실태,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고고학의 탄생, 식민지 강점에서 독립한 신흥국들의 정체성 찾기에서 비롯한 ‘약탈 문화재 반환’ 논란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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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가장 제국적인 국가”이자 “양적·질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재 컬렉션을 보유한” 영국에 주목한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 분야의 ‘주제사’ 연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화재 수집의 합법성 논란을 포함해 ‘반환’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 원산국과 소유국이 각각 내세우는 논리를 치밀하게 분석해, 현실적 해법을 모색한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선, 강탈한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이 당연하다는 ‘문화 민족주의’와, 국가 경계를 넘는 인류 문화유산의 보존과 연구를 위한 최적 환경을 따지는 ‘문화 국제주의’가 맞선다. 이집트 유물 반환 논란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독립한 이집트는 국가 정체성을 ‘아랍’으로 규정했다. “이슬람 시대 이전 고대문명의 흔적은 이교도의 우상일 뿐”이었다. 파라오 시대 유산의 연구·보존은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일부 엘리트와 친서구파 정치인들의 몫이었다. 대다수 원주민의 무관심이 서구의 문화재 소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된 것은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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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정당한 문화재 소유권 환수를 위해선 “민족주의적 감정이나 외부의 동정론에만 기댈 게 아니라, 반환 거부 논리를 구체적 사례로 반박”하고, 문화재 보존의 현실적 대안과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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