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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인생수업]내 감정 다스리고, 상대의 마음 공감해주면…‘생의 의지’ 샘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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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당신과 나의 대화

경향신문

김혜정 자살예방전문강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벼랑 끝에 선 당신과 나의 대화’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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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이유 ‘고립’ 공통분모 가져 들어주는 일이 최고 해법

못 들은 척·딴 얘기 꺼내거나 잘못된 위로는 되레 마음의 문 닫아

‘자살 생각하고 있나요?’…어렵겠지만 질문줘야 견딜 힘 생겨나

감정·욕구 나열한 자신만의 목록 작성하면 ‘흔들림 예방’ 도움

‘당신을 살리겠다’ 주변의 의도 전달돼도 ‘삶의 유지’에 버팀목


“제가 자살하면 학벌사회에서 소외된 청년이 죽음을 택했다고 글을 써주세요.” 웬만하면 녀석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자살’이란 말이 걸렸다. 8년 전 한 집회 현장에서 만난 고3 학생은 이제 20대 중반 청년이 됐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졸 학력으로 취직하려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떨쳐냈으면 좋겠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신경이 쓰인다. 죽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만 이번이 두 번째였다. “왜 매번 그런 말을 하니? 다들 그렇게 살아.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은데 왜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니. 죽을 용기로 살아. 언제 한번 만나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하자.”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으레 하는 인사치레인 것처럼 술 약속도 그랬다. 그 친구에게 한 말은 잘못된 위로의 ‘결정판’이다. ‘그런 말 말고 술이나 하자’며 상대의 감정 흐름을 막고, ‘왜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냐’며 평가하고, ‘죽을 결심으로 열심히 살라’며 충고하는 말하기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인생수업 ‘벼랑 끝에 선 당신과 나의 대화’에서 김혜정 자살예방전문강사는 이런 말들을 “상대에 공감하는 말이 아닌, 나를 방어하는 말”이라고 했다.

“‘나쁜 생각 하지마’ ‘자살은 큰 죄야’ ‘인생 그렇게 살면 안돼’ 이런 말들을 하기도 하고, 못 들은 척하거나 딴 얘기를 꺼내기도 하죠. 사실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고 불안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대응하는 것 같아요.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그런데 마음속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이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의 대답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 대화하기 전, 내 감정 다스리는 법

상대의 이야기를 감당하려면 우선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내가 힘든데 남과 공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나를 꽉 막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우선 내 감정을 인지하고 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왜 화가 나는 건지, 뭐가 부족해 그런 것인지를 알아야 해요.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야 화를 해소할 수 있는지 알아야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요. 화가 났는데 내 감정을 정확히 모르고, 욕구도 충족할 수 없으면 계속 불안, 분노 같은 느낌만 건너다니게 되죠. 내 감정을 알고 다스리는 경험을 할수록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평소에 감정이나 욕구를 나열한 자신만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 드는 느낌들에 대한 단어를 모아보자는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어떤 느낌이 들까. ‘답답한’ ‘어색한’ ‘까마득한’ ‘겁나는’ ‘진땀 나는’… 이런 형용사를 모아보자.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많을수록 나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누적된 ‘형용사 리스트’에서 그날그날 자신의 감정을 찾아보고,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런 감정을 해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수면’ ‘음식’ ‘꿈’ ‘목표’ ‘즐거움’ ‘자신감’ 등이 답이 될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답이 담긴 ‘욕구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나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면 언제든 상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상대의 말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상 능력이 저하되는데 특히 대인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에서 오해하고 비난하거나 충고하기 십상이죠. 그가 당신을 비난하는 말을 하면 보통은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 날 못살게 굴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거리를 두게 되잖아요? 그럴 때에는 ‘나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일 뿐이다. 굉장히 고통스러우니 제발 도와달라고 외치는 중이다’라는 생각으로 들어야 그를 도울 수 있어요.”

종종 그냥 들어주는 일이 최고의 해법이기도 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묵하는 태도. 이건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기에 강력한 힘이 있다”며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해결책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거죠.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섣불리 조언하고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실 내가 당황스럽고 힘들어 어서 이런 상황을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가 아니라, 내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 행동이죠. 내 조언이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요.”

김 강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함께하려는 의지”라고 했다. “어떤 말하기는 맞고, 어떤 말하기는 틀리다는 따위의 공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대에 맞춰 유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주고받을 수 있어야지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냐는 거예요. ‘당신과 연결되기 위해 함께하겠다’는 생각으로 상대와 대화한다면, 그는 당신의 말속에 담긴 진심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겠죠. ‘너의 조언이 큰 도움은 안돼. 그래도 네가 함께 있다는 것이 고마워. 네가 말을 해주니까 마음이 좀 놓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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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막는 ‘두 가지 질문’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여기에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을 추가해보자. 사실 자살 신호는 도처에서 감지된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 물건을 정리하기도 한다. 갑자기 선물을 건넬 때도 있다. 걱정은 되지만 여전히 그의 속내를 모르겠다면 직접 물어보자. 첫 번째 마법의 질문, ‘혹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나요?’

“어려운 말이죠. 그 누구도 쉽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못할 거예요.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까’ 생각이 들잖아요? 하지만 제일 필요하고 정확한 질문이에요. 어렵다면 부드럽게 고쳐서 말해보세요. ‘너 요즘 죽고 싶다는 말도 하고, 물건을 정리하기도 하잖아. 안색도 좋지 않고…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니?’”

그는 “그의 삶은 황폐하고 그야말로 재난 상황이다. 아무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견디고 있었을 뿐”이라며 “그런데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첫 번째 질문이 상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질문이라면, 다음 질문은 생의 의지를 샘솟게 한다. 두 번째 마법의 질문, ‘그런 상황에도 당신이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힘은 무엇인가요?’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뒤에, 그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렸을 때 물어야 할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니? 무엇이 너를 계속 살게끔 만들었니?’ 같은 질문이에요. 우리는 보통 ‘너를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올려봐’ ‘너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라며 그의 자살을 막으려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밖에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지’ ‘자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면 또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또 계획이 구체적일수록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인적자원을 이용해 그의 자살시도를 막아야 한다.

“‘나 죽고 싶어’ 그런 말을 들었다면 ‘이 사람이 날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는 말이거든요. 그랬을 때 그 사람이 누구하고 연결됐는지가 중요합니다.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인적자원을 그와 연결시켜야 합니다. 상대가 비밀보장을 요구한다면 이렇게 말하세요. ‘나를 믿고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너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 너를 살릴 거야. 그게 너를 보호하는 방법이고 내가 아픔을 겪지 않는 방법이야. 너와 나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비밀보장을 약속할 수 없어.’”

김씨는 “‘벼랑 끝에 선 당신과 나의 대화’는 ‘당신을 살리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함께하면서 우리의 연결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너 혹시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고 있니?’ ‘너의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은 뭐니?’

이제 다시 말을 걸어본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녀석은 반가워했다. “아니요.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재밌는 일이 많거든요. 저를 버티게 해준 힘이오? 교회예요. 가지 않으면 전화도 하고 안부도 묻거든요. 또 형이 이렇게 연락해줄 때도 힘이 나네요. 저는 친구가 많지 않거든요.”

자살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고립’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고 한다. 사람은 ‘연결’이 끊어지면 죽음을 생각한다. 내 질문이 그의 끊어진 고리를 이어주는 매듭이 될 수도 있다. 이 친구는 내가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내게 알려줘.”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9월 수업은…청년 재테크‘호갱’ 되지 않고 돈 모으는 법

인생수업 9월 주제는 <청년 재테크, ‘호갱’되지 않고 돈 모으는 법>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월급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이시라고요? 덜컥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호갱’이 되는 건 아닌지, 앞으로 집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되신다고요?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의 구본기 소장이 20~30대 청년들의 재테크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일시 : 9월17일 화요일 오후 7시~8시30분

장소 : 서울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도보 15분, 5호선 서대문역 도보 10분)

참가비용 및 인원 : 1인당 2만원, 30명 안팎

신청방법 : all.khan.co.kr/apply 참조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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