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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좀비 열차에 올라탄 ‘현실 지옥’, 희망도 절망도 결국 산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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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2)부산행

감독 연상호(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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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화에서 기차의 속성은 이야기의 쾌감을 양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요컨대, 각 칸에 독립된 세계가 구현된다. 익명의 타자들이 공존한다, 일정한 속도로 이동과 정차를 거듭한다, 바깥과 단절된다 등등. 기차의 역동성은 액션을 뽐내기에도 유용하지만, 그것의 한정된 공간은 사회질서를 축소해서 보여주기에도 손색이 없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에서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폭로해온 연상호 감독이 첫 실사영화의 소재로 기차를 택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부산행>은 부산행 열차에 좀비를 태워 좀비 장르 특유의 활력과 정치성을 ‘한국적’으로 버무리며 그해 최대 화제작이 되었다.

탑승객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아내와 별거를 하고 어린 딸과 기차에 오른 남자, 임신한 여자와 남편, 노숙자, 야구부원들, 노년의 자매들, 비즈니스맨 등이 각자의 목적을 안고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출발한 뒤 그들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도시에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기차 내부도 바이러스와 접촉한 뒤다. 순식간에 떼가 된 좀비들이 아직 공격받지 않은 칸을 습격하고 어느새 기차도 움직이는 감옥처럼 변한다. 그 과정에서 기차 안 대립 구도도 다층화된다. 좀비와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은 사람들만 쫓고 쫓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난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인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있다. 정부의 대응은 무력하기 이를 데 없고, 재난의 근원은 밝혀지지 않으며, 살아남은 자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2016년 여름, 천만명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좀비와 사람의 추격전에서 장르적 쾌감을 맛보고 가족 신파에 훌쩍이면서도, 이 영화의 서사적 설정들을 마냥 허구로 즐길 수만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편의 오락영화가 당대 사회구조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즉각적으로 환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남다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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