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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5세대 이동통신

5G 시대 01X 사용자들, “01X 번호로 5G 쓰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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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번호의 자부심이 다릅니다.’

2000년대 초반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 문구다. ‘011’, ‘016’, ‘017’, ‘018’, ‘019’ 등 통신사마다 식별번호가 달랐던 시절에는 식별번호가 하나의 브랜드로 통했다. 당시 통신사를 옮기려면 식별번호도 바꿔야 했고, 통신사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번호의 브랜드화에 골몰했다.

그러나 2004년 정부가 ‘010 통합정책’을 시행하면서 ‘011’, ‘016’, ‘017’, ‘018’, ‘019’ 등의 식별번호로는 더이상 새로운 가입자를 모집할 수 없게 됐다. 어떤 통신사에 가입하든 010 번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3G 서비스 개통과 스마트폰 출시가 맞물리면서 010 사용자수는 급증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아직도 2G를 사용 중인 가입자는 지난 6월 기준 134만여명에 달한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수의 1% 수준이지만, 여전히 상당수 가입자가 2G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3G나 4G LTE, 5G 등으로 이동할 경우 번호를 변경하는 것을 원치 않아 15년 넘게 2G를 사용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01X 번호 그대로 차세대 이동통신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것이 01X 번호 사용자들의 주장이다. 5G가 개통되고 2G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01X 번호 그대로 5G 쓰게 해달라, 현대판 창씨개명 싫다”

2007년 개설된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에는 30일 기준 3만616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01X 번호로 3G와 4G LTE, 5G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21년째 017 번호를 사용 중이라는 자영업자 A씨는 “2G는 종료해도 상관없다”며 “그냥 번호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는 “번호에 큰 의미는 없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017 번호가 좋다”며 “01X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뭔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번호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자영업자 B씨도 “최소 15년 이상 기존에 쓰던 번호를 명함에 새기며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어느 순간 번호를 바꾸라고 한다”며 “세월이 지난 만큼 쌓인 신용을 정부로 인해 초기화해야 하는 것인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C씨는 “010 번호통합 정책은 현대판 창씨개명과 다를 바 없다”며 “개인의 휴대전화 번호는 자신을 대표하는 하나의 번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01X 번호를 유지하기 위해 2G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 번호 그대로 세대를 거듭해서 사용하고 싶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주파수 종료 시한, 장비 노후화…2G 서비스 연장 어려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국내 2G 가입자는 134만5282명에 달한다. 3G 가입자 수(878만1959명)나 4G( 5602만351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지만,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도 아니다.

현재 통신사들은 01X 번호를 사용하는 2G 서비스의 종료를 예고하고 있다. SKT의 경우 올 상반기에 ‘연내 2G 서비스 종료’를 시사했다. SKT에서 2G 서비스를 이용 중인 01X 사용자들은 SKT의 2G 종료 방침에 반발하며 지난 6월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SKT는 이런 움직임을 의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20년이 넘은 장비 노후화로 2G를 연장하는 것이 어려운 데다, 2G 주파수의 정부 반납 시한이 2021년 6월로 얼마 남지 않아서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통신사나 가입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아니다. 실상은 통신사와 가입자 모두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2004년 시행한 010 통합정책은 01X 번호의 종료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신사가 사용 중인 주파수의 유한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번호 전환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2G 주파수의 반납 시한, 장비 노후화 등의 문제가 더해지며 2G 종료 시점이 임박해 통신사와 사용자 간의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010 통합정책에 순기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통신사마다 각각의 식별번호를 쓰던 시절에는 번호의 브랜드화에 따른 경쟁으로 서비스 품질 경쟁이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이후 식별번호가 010으로 통합되면서 시장의 번호이동이 활발해졌고, 자연스레 서비스 품질 경쟁으로 이어졌다. 한정된 번호 자원을 010으로 집중시키는 효과도 있다. 다만 010 통합으로 인한 번호이동 과열, 010 번호의 부족 등의 부작용도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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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 문제로 01X 지속 어려워, 헌재도 각하

정부는 기존의 01X 사용자가 010으로 번호를 변경할 경우 한시적으로나마 01X 사용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KT가 2G를 종료했던 2011∼2013년에도 해당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01X 사용자들은 기존 번호 그대로 차세대 이동통신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이미 번호를 바꾼 사용자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2012년 KT가 2G를 종료했던 당시 01X 사용자 1681명이 정부의 번호통합 정책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각하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동전화번호를 구성하는 숫자는 인간의 존엄과 관련이 없어 인격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재산권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으로 남은 2G 서비스의 종료가 임박하면서 이에 따른 분쟁도 전망되고 있다. 올해 초 SKT가 2G 연내 종료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SKT 2G 사용자 630여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G를 종료했던 KT는 정부의 허가를 받을 당시 전체 가입자 수 대비 2G 가입자의 비중이 1% 미만이었지만, SKT는 지난 6월 기준 2%대의 2G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SKT 관계자는 “2G 서비스의 안정적인 종료를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며 “현실적으로 2G 서비스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어 하반기 종료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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