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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홍콩 대규모 시위

공항길 차단 시위대 “홍콩 경찰들 수치” 물대포 맞서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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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로 공항 내부 못 들어가… 2일엔 파업ㆍ동맹휴학 등 전선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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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완전 철폐와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가 1일 홍콩국제공항 밖으로 모여들어 진입로를 봉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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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열기가 13주째로 접어들면서 전방위로 폭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대규모 동시다발 시위로 경찰의 금지방침을 무력화하더니 1일 시위대는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며 시민들의 단합된 힘을 과시했다. 2일에는 파업과 동맹휴학으로 전선을 넓혀 정부를 향한 압박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참이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의 화염병에 맞서 경찰의 최루탄, 물대포 대응은 물론 실탄 경고사격과 지하철 객차 내 구타 등 물리적 충돌이 난무하며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시위대는 1일 타깃을 공항으로 잡았다. 2주전 사흘간의 점거 시위로 ‘항공 대란’을 초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곳이다. 하지만 법원의 시위 금지령에 따라 내부 진입이 차단되면서 공항으로 가는 모든 경로를 봉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1시부터 시내 공항버스터미널과 공항의 버스하차장, 공항철도 플랫폼에 집결해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을 조장했다. 공항의 관문인 칭마(靑馬)대교에서는 자동차를 중간에 세워놓는 방식으로 사실상 도로를 마비시켰다.

경찰은 오후 2시부터 공항 입구에 진을 치고 시위대와 맞섰다. 공항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건물로 몰려든 시위대와 몸싸움이 벌어져 창문이 파손되기도 했다. 무력개입 가능성이 끊이지 않는 중국 선전(深圳)과 인접한 틴수위와이(天水圍)에서 당초 반대 시위를 열려 했지만 공항에 역량을 쏟아 붓기 위해 취소했다. 다만 전날 시위가 격화됐던 입법회(우리의 국회) 인근 홍콩주재 영국영사관에서는 예정대로 500여명이 모여 “영국 여권 소지자에게 홍콩 거주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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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이 민간인권진선의 도심 집회를 금지하자 대신 기독교 단체가 주관한 집회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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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1일 새벽까지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홍콩 시민들의 자발성과 응집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민간인권진선(민진)은 8월 31일 도심 차터가든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홍콩 행정장관(정부수반)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도심을 점거한 2014년 ‘우산 혁명’이 무산된 지 꼭 5년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경찰이 이례적으로 막아서면서 민진은 집회를 취소하며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전례 없는 탄압에 맞서 다시 물꼬를 튼 건 시민들이었다. 50~60대가 주축이 된 ‘홍콩의 죄인을 위해 기도하자’라는 기독교 단체가 총대를 멨다.

낮 12시 30분쯤, 번화가인 완차이(灣仔)역 부근 축구장에 집결한 수천 명의 인파가 일제히 “내 눈을 돌려달라”고 함성을 질렀다. 지난달 시위에서 오른쪽 눈을 다쳐 실명한 여성을 상징하는 구호였다. 이들은 “Sing hallelujah to the lord(주께 찬양을)”라는 노래를 부르며 “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 캐리 람(林鄭月娥)과 시진핑(習近平)은 아니다”라고 외쳤다. 딱히 주도하는 사람 없이 아무나 ‘홍콩인’이라고 선창하면 다 같이 ‘힘내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60대 남성은 “내 나이가 많지만 경찰에 체포되더라도 두려움 없이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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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완차이역 근처 축구장에서 지난달 31일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진압에 다쳐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을 상징하는 항의 표시로 캐리람 행정장관의 오른쪽 눈을 빨갛게 칠한 피켓을 들고 있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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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오후 1시 30분쯤 집회 장소를 벗어나 찬송가를 부르며 지하철역 두 정거장 떨어진 차터가든으로 향했다. 당초 민진이 집회를 신고했다가 거부당한 곳이다. 경찰은 “불법집회 가담자는 모두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미 1,000여명의 시민이 모여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50대 여성은 “홍콩 시민이 공공장소에 오는 건 당연한 권리”라며 “위험한 건 경찰인데 왜 내가 집에 가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한 켠에는 마스크를 낀 앳된 표정의 소년 3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16살 친구들(우리의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진(陳) 군은 “만약 충돌이 발생하면 시민들을 보호하러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오후 2시 30분, 길 건너 성요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하얀 사제복을 입은 남성이 “죄인 캐리 람을 심판하러 가자”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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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들이 미국 영사관 앞 길목을 막아서며 캐리람 행정장관의 관저로 향하는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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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정면에 방탄복을 입은 무장경찰 30여명이 나타났다. 경찰은 “당신들은 법을 어겼으니 해산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소리 쳤고, 시위대는 “더러운 경찰, 수치스럽다, 눈동자를 돌려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3시, 폭우가 쏟아지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시위대가 수만 명으로 불어나 긴장수위가 더 높아졌지만 경찰이 행진을 차단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물리적 충돌은 피했다.

세를 과시한 시민들은 대로를 가득 메우며 홍콩 주재 중국 연락판공실(중련판)로 향했다. 오후 4시. 당초 민진이 이날 시위에서 최종 타깃으로 삼은 장소다. 차터가든 인근 센트럴역을 지날 즈음 인파는 이미 수십만 명을 족히 넘어섰다. 시민들이 펼친 대형 현수막에는 ‘공산당 믿어요? 바보야’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시위대는 “Stand with Hong Kong, Fight for freedom(홍콩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우자)”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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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거리 시위 현장에 등장한 깃발. 태극기와 성조기를 붙여 홍콩 시민들을 지원하는 동맹의 힘을 상징했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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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여가 지나 시위대의 발길이 멈칫했다. 중련판 앞에 2대의 물대포차와 3대의 장갑차, 수백 명의 무장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봐야 별 소용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시위대는 입법회(우리의 국회)로 목표를 바꿨다. 거센 물결이 방향을 돌려 우르르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잠시 후 입법회 건물에 내건 깃발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최고수위의 경고표시다. 방독면과 마스크를 낀 시위대 수천 명이 몰리면서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맞섰다. 하늘에는 헬기의 굉음이 귓가를 때렸고, 소방차 수십 대가 입법회 주위를 돌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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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방에 몰려있는 홍콩 시위대가 입법회(우리의 국회) 앞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과 물대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열을 유지하며 맞서고 있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시민들 앞 도로가 물대포 흔적으로 흥건하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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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가까이 다가서자 저만치에서 최루탄이 뿌연 연기를 뿜어냈고,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가 파란 염료가 섞인 물줄기를 난사했다. 염료는 시위대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시위 참가자를 가려내기 위한 조치다. 이에 맞서 시위대는 새총을 쏘고 벽돌을 던졌다.

대여섯 명의 시위대가 앞을 막아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홀로 방독면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매캐한 냄새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제서야 최루가스가 식도를 타고 몸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화염병을 옷 안에 숨기고 자세를 낮춰 경찰을 향해 뛰어가던 한 남성은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거칠 것 없다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입법회를 향해 늘어선 수백 명의 시위대는 손에서 손으로 헬멧을 비롯한 각종 보호장구를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선봉대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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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이 입법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선봉대를 향해 줄지어 늘어서 헬멧 등 보호장구를 전달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방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쏜 파란색 물대포가 선명하다.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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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넘어 날이 어두워지자 경찰에 맞서 설치한 바리케이드에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은 고무탄총을 쏘면서 대로변에서 밀고 밀리는 활극이 펼쳐졌다. 밤 11시쯤 주룽(九龍)반도의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는 경찰이 귀가하는 시위대를 지하철 내부까지 쫓아가 구타하면서 40여명을 체포했다. 2주전 170만명이 운집한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경찰이 허공을 향해 실탄 경고사격을 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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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완차이에서 31일 밤 시위대가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이자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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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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