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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美에 ‘안전보장’ 들고 오라는 北…주한미군 카드에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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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9일 "합의된 시간·장소서 美와 토의"

6월 30일 북·미 판문점 회동 이후 71일 만

폼페이오·비건 "안전보장" 메시지 응답했나

중앙일보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4월 28일 전한 김정은 국무위우원장.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회의실로 보이는 곳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오른쪽은 이용호 외무상.[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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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전술’로 일관하던 북한이 9월 하순으로 시점까지 박아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일 담화를 내고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유세장으로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자. 만남은 좋은 것”이라고 호응했다.

최 부상의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실무협상에 합의한 지 71일만에 나왔다. 당초 미국은 판문점 회동으로부터 2~3주 내에 실무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 그 뒤엔 한ㆍ미 연합훈련(8월 11~20일)이 끝나면, 또 그 이후엔 최고인민회의(8월 29일)를 기점으로 봤지만 허사였다. 9월 말 유엔 총회에 이용호 북한 외무상도 불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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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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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상의 담화 발표 소식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정해진 것은 9일 오후 11시 50분쯤이었다. 시차를 고려한 대미 메시지였다. 정권 수립 71주년 기념일인 9ㆍ9절에 대외 메시지 없이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미국시간으로는 9일 오전 담화를 낸 것이다.

최 부상은 담화에서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 개최에 준비돼 있다고 거듭 공언한 데 대해 유의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공언’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어느 국가든 스스로 방어할 주권적 권리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우리는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6일 라디오 인터뷰)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긴장이 완화하면 우리 군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유지ㆍ훈련할 필요가 없다.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모든 문제에서 진전이 있을 때 사용 가능한 전략적 재검토에 포함될 수 있을 것”(6일 미시간대 연설)이라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올 2월만 해도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이런 트레이드오프(거래)를 제안하는 어떤 외교적 논의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는데,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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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오른쪽)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이 정보 공유 협정에 관해 내린 결정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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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에선 이런 당근이 북한을 끌어내는 데 주효했다는 관측이 많다. 소식통은 “하노이 노 딜 이후 북한은 비핵화 상응조치에 대한 요구사항을 제재 해제에서 안전보장으로 명확히 바꿨다. 안전보장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요구인데, 미국이 이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하니 북한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자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또 “24일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있을 텐데, 실무협상 개시 전 이 메시지까지는 들어보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부상의 담화 발표 이튿날인 10일 곧바로 단거리 도발을 감행한 것도 ‘이런 자위권은 계속 인정하라’는 것으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제껏 안전보장과 관련해 명시적으로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 적은 없다. 북ㆍ미 수교,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포괄하는 평화체제 수립이 대북 안전보장 방안으로 꼽혀왔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ㆍ19 공동성명에서도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은 별도 포럼에서 다룬다고만 합의하고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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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협의를 갖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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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상은 이번에도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고만 하며 사실상 미국이 먼저 실질적인 안전보장 방안을 만들어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전보장 의제가 자칫 잘못하면 협상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또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북한이 과거에 발표한 입장 등을 근거로 다양한 안전보장책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2016년 7월 북한 정부 대변인이 발표한 ‘비핵화 5대 조건’은 ▶남한의 핵무기 공개 ▶남한의 핵무기 철폐 ▶핵타격수단의 한반도 주변 전개 금지 ▶북한을 상대로 한 핵 사용 금지 확약 ▶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하지만 2005년 9ㆍ19 공동성명에서 이미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미국은 핵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7월 폼페이오 장관이 고위급 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때도 “정세 악화와 전쟁 방지를 위한 기본인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에 대해서도 “총 한자루 폐기하지 않고 병력을 그대로 둔 상태”라며 사실상 주한미군을 문제삼았다. 험난한 협상이 예상되는 이유다. 다만 최 부상의 갑작스런 담화 발표는 물밑에서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는 방증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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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의 새로운 협상 대표로 거론되는 김명길 전 주베트남 북한대사.[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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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0일 오전 비건 대표와 전화 협의를 하고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 측은 최 부상의 담화에 대한 평가도 공유했다. 이 본부장은 다음주쯤 워싱턴을 방문해 비건 대표와 만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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