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중앙시평] 대한민국을 짓누르는 연령 카스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력한 연령 카스트 극복 없이는

이념 갈등도 기득권 강화 도구

밀레니얼 세대 사회 참여 없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은 불가능

중앙일보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사회는 많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사회가 가진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소수의 구성원이 자원을 독점하면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사회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전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회로 한걸음 발전 해 나간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때론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사회 제도에 대한 불만이 생겨나고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원을 독점한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억압할 때다. 그래도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고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사회는 궁극적으로 발전하고 지속가능하다.

가장 좋지 않은 때는 ‘태생적으로’ 자원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사회이고, 어떠한 갈등도 자원의 쏠림을 막을 수 없을 때다. 제도적 장치가 있을 수 있지만 형식에 불과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원을 독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구성원에게 체념을 강요한다. 이런 사회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고 미래를 기대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자원의 쏠림이 태생적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상황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카스트와 같이 강한 신분제도를 가진 사회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이 우려스러울 정도다.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적인 시각만 고려하면 현재는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그 기간이 길어질 때다. 진보와 보수 모두 광장에서 서로의 정당성을 외치다가 요즘은 유튜브와 포탈 검색순위 등의 온라인 공간에서도 격돌 중이다. 이념적 대립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갈등이다. 날이 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언어폭력이 도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왔지만, 그래도 사회는 발전 가능하다. 진보와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들이 있고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청년 혹은 밀레니얼과 50대 기성세대 간의 갈등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가장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바꾸거나 변경조차 불가능한 불균형적 연령구조가 마치 카스트처럼 사회를 짓누르고 있어서다.

모두가 알다시피 50대는 인구의 크기는 물론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 밀레니얼세대는 자원의 절대적인(상대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궁핍 상태에 놓여있다.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성세대에게 쏠려있는 자원이 조금이라도 후속 세대들에게 나눠질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은 50대인 기성세대는 한 연령에 80만 명대의 인구가 있다. 밀레니얼세대는 60만 명대다. 한 연령에서만 20만 명씩 차이가 난다. 인구수의 차이는 본연적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 기성세대 중심에는 소위 386세대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20대 초중반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 위 연령대가 숫자도 적었고 교육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무주공산을 차지한 386들은 20대부터 지금까지 30년 간 정치를 해 오고 있다. 정권을 유지 했던 집단은 물론이고 이에 반하였던 저항 세력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회와 그 언저리에서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왔다.

이들은 본인들만이 국민을 대표하고 현재의 사회 갈등을 풀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밀레니얼세대가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너희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편가르기로 윽박지른다. 혹여나 광장에서 집회를 할 때도 언제나 기성세대가 앞장서야 하고 ‘어린’ 밀레니얼은 그냥 뒤에서 들러리로 참여만 해달라고 한다. 본인들은 20대부터 활발히 사회 문제에 참여한 어른이었지만 밀레니얼을 절대로 어른 취급하지 않는다. 연공서열이 아주 강한 사회에서 자란 기성세대는 사회적 지위로 자연스레 최고의 위치에 와 있다. 말로는 서로의 방식으로 개혁을 외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기득권을 절대로 놓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갈등은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자원이 한 세대에게 편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씨앗부터 앗아가 버리는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사회가 연령 카스트를 극복하고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밀레니얼이 다시 태어나거나 기득권이 과감하게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실현이 가능한 것은 오직 후자다. 내년 총선에서 모든 정당이 비례대표가 아니라 지역구의 절반을 밀레니얼 세대에게 주는 건 어떨까. 그들이 이념으로 경쟁하든 환경 문제 등 다양한 가치로 갈등하든 상관하지 말고. 기성세대가 20대 청년 시절 누렸던 사회 반합의 과정을 겪게 해 주자. 언론사의 지면도 과감하게 청년에게 할애하자. 기성세대인 필자의 이런 주장도 밀레니얼이 직접 쓰면 백배는 더 잘 쓸 것이 분명 할 테니….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