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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신라 추석 가배는 지역 위계질서 공고화한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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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인 씨 '한국고대사탐구'에 논문…"남녀 성역할 드러나"

연합뉴스

추석 보름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가 음력 8월 15일에 치른 '가배'(嘉俳)는 왕실 여성에게 지역 노동을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해 지역에 따른 위계질서를 낳은 의례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왕실이 개입해 행한 가배 때 이뤄진 놀이문화를 보면 남성과 여성을 향한 고정적이고 차별적인 성역할이 나타난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백동인 씨는 학술지 '한국고대사탐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 '신라 가배의 정치성'에서 역사학 관점으로 가배의 출현 배경을 해석하고 사회적 의미를 고찰했다.

백씨는 신라의 추석이라고 할 만한 가배 관련 기록 중 '삼국사기' 유리이사금(재위 24∼57) 9년 기사에 나오는 "왕이 6부를 정하고 둘로 나누어 두 왕녀가 각각 부의 여자를 거느리고 편을 가르도록 했다. (중략)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 진 쪽이 술과 음식을 베풀어 이긴 쪽에 사례했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는 "생산 장려와 제사가 주요 기능인 가배의 시작을 설명하면서 굳이 6부를 언급한 이유는 그 배경에 6부가 있기 때문"이라며 "가배는 촌(村)에서 발생한 공동 노동을 왕녀가 감독하게 함으로써 국가적 의례로 개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왕녀가 담당할 '구역 설정'과 비-왕녀-6부 여성 사이 '위계 분화'는 각각 신라 행정 체계인 6부, 관등과 통하는 측면이 보인다"며 가배를 통해 왕녀와 6부 토착 유력자 여성 사이에 공고한 위계질서가 구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백씨는 "제사와 잔치는 노동 목표 의식과 정당성을 강화하고 피로감을 해소해 참여자가 강한 노동과 왕녀 통제에 수긍하게끔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역사서에서 신라 명절을 소개할 때 가배가 빠지지 않는다면서 "8월 15일에 관인이 활을 쏘게 하고, 말과 포(布)를 상으로 내린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신라인이 가배 행사로 여성은 길쌈놀이, 남성은 활쏘기를 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여성에게는 농업과 수공업 생산을 통한 경제적 기여를 강조했으나, 남성에게는 군사적 성취를 요구했다"며 "여성의 성과는 사회로부터 보상을 받지 않았지만, 남성은 능력과 성취에 따라 상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대해 "삼국 사이 끊임없는 전쟁이 여성에게는 가정에서 이름 없는 생산자로 남도록, 남성에게는 국가를 위해 싸우도록 부추긴 결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백씨는 "가배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며 "요즘 한가위 풍경이 매년 다른 것처럼 위정자가 원하는 질서, 참여자 욕망, 기술적 여건, 시대적 분위기 등이 가배 놀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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