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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내년 미국 대선 ‘꽃보다 할배·할매’판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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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0년 미국 대선에 뛰어든 유력주자인 동시에 ‘고령 논란’에 시달리는 후보들. 왼쪽부터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8), 조 바이든 전 부통령(77),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70),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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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기에 적합한 나이란 게 있을까.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지금 이런 논쟁이 한창이다. 유력 후보들이 죄다 “미국 대통령을 하기에 너무 늙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시점을 기준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45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1946년생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73)은 말할 것도 없이, 정권교체를 노리는 민주당의 ‘빅 3’ 모두 70대다. 41년생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8)과 42년생 조 바이든 전 부통령(77)은 트럼프보다 너댓살 많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도 49년생으로 고희에 이르렀다.

물론 1년 2개월여 남은 내년 선거일까지 이 구도가 그대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3인방의 아성이 견고해 워싱턴 주변에서는 ‘늙은 백악관’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

투표용지에 찍을 만한 ‘선택지’가 70대 이상 노인들로만 좁혀지는 데 대해 미 언론은 냉소를 쏟아내고 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할 때 샌더스는 벌써 27살” “바이든이 42살 때 애플이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를 출시했다”(보스턴글로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당시 트럼프는 아직 첫 부인 이바나와 혼인상태였고, 워런은 여전히 공화당 지지자였다”(뉴욕타임스)라는 식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관례상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에 보내는 걱정 어린 시선이 더 많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백인 남성의 상징과도 같은 트럼프의 대척점에 설 만한 젊고 개혁적 이미지의 후보를 내야 이길 수 있다는 게 일종의 선거판의 법칙이다. 이 같은 불문율을 당원·지지자 모두 직감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젊음’을 무기로 대선에서 승리해 왔던 정당이다. 1960년 선거에서 승리한 존 F 케네디, 1992년 빌 클린턴,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선 당시 각각 43세, 46세, 47세로 모두 40대였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현재까지는 바이든, 샌더스, 워런 모두 트럼프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앞서 있긴 하다. 하지만 ‘정치인의 나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연령 차별주의(ageism)’라 불릴 정도의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서 이상적인 미 대통령의 연령대에 관한 질문에 ‘70대’라고 답한 이는 고작 3%에 불과했다. 같은 달 이코노미스트·유고브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9%는 70대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너무 늙은 나이’라고 답했다.

이러다 보니 ‘나이 논쟁’이 민주당 경선전 초반을 후끈 달구고 있다. 당연히 젊은 후발주자들이 선두주자들을 공략하는 포인트다.

현대 미국 대선 역사에서 최연소 후보인 37세의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세대를 아우르는 정의’를 내세우며 미국판 ‘3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동성결혼까지 한 부티지지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미래에 관한 의제를 다루는 데에는 젊은 후보가 나서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팀 라이언 하원의원(46)도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이에 맞춘 새로운 생각과 접근을 하려면 세대 교체가 일어나야 한다”며 세대논쟁에 동참했다.

그러자 트럼프에게 ‘형님뻘’인 두 후보는 특히 논쟁 확산을 막는 차원에서라도 역공을 펴고 있다. 샌더스는 “진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이념)이지, 생물학적 나이는 덜 중요한 것”이라며 맞섰고, 바이든은 아예 “나이 문제를 따지는 건 당연하다”며 “대선 전에는 의료기록 일체를 공개하겠다”고 당당하게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 안팎의 상황을 보면 70대 3인방 후보들은 나이와 관련해서는 수세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대선 후보만 20명 이상이 난립하면서 오히려 인지도나 지명도가 높은 이들에게 지지가 더욱 쏠리는 분위기다. 특히 독주에 가깝던 바이든의 지지율이 내려오고, 샌더스·워런의 추격이 강해지면서 세 후보는 사실상 20% 동률(8월26일 발표 몬머스대 여론조사)에 이르고 있어 초반전 흐름은 ‘셋 중 하나’로 굳어가고 있다.

민주당 경선 1차 토론에서 호기롭게 바이든을 향해 “내가 6살 때 당신은 이미 대선 후보였지 않느냐”고 쏘아붙이던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39)은 지난달 경선 하차를 선언했다.

오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리는 민주당 3차 TV토론은 후보 난립으로 이틀에 걸쳐 열린 1, 2차 토론과 달리 한 자리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특히 3인방을 향한 ‘나이 공세’가 집중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부터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는 반론도 있다. 워낙 호불호가 엇갈리는 트럼프 현 대통령에 맞서는 민주당 후보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들이 반 트럼프층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바이든,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 월가의 탐욕과 싸워온 워런 등 트럼프에 대비되는 각자의 모습에 대한 개별 지지층이 확고해서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도 노인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오면 되는 것이지, 후보 자체가 젊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른 전망이긴 하지만 내년 대선이 ‘70대 대결’로 치러질 경우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는 ‘누가 더 젊은 후보를 내세우는가’로 흐를 공산이 크다. 2008년 72세였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44세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2012년 65세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42세 폴 라이언 하원 의원을 지명한 것과 같은 식이다.

민주당의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가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트럼프는 연령 이슈에는 아랑곳 않는 눈치다. 오히려 자신이 젊고 건강하다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그는 공화당에서 대선 경선 도전을 선언한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74)를 향해 “상을 받을 때조차 몸을 바로 일으킬 수 없는 사람”이라며 나이와 건강 문제를 제기했다. 트럼프와 웰드는 불과 한 살 차이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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