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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폭우 쏟아진 밤, 자다 깨 보니 선풍기·슬리퍼가 물 위에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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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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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집 화장실 세트. 지하로 내려갈수록 방값은 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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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을 태풍과 지각 장마가 우리 속을 썩였다. 올가을은 날씨가 뒤죽박죽이다. 오래전 강동구 천호동 반지하방에 살던 때가 생각난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방값은 싸다.

그 당시 나도 월세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반지하방을 전전했다. 부모 도움은커녕, 내가 번 것마저 탈탈 털어 부모님께 보태드리던 시절이었다.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만져보지 못하던 때였다. 가난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맨몸으로 어렵게 살림을 시작하고 첫아이를 낳고서 6년간 결혼식도 못 치르고 살았다.

지하방은 어린아이들 건강에 최악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형편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다. 지하방은 선풍기를 온종일 틀어놔도 기저귀가 잘 마르지 않는다. 곰팡이와 습기 때문에 아기는 피부염과 호흡기질환을 달고 살았다.

새로 바른 벽지는 처음 이사 들어갈 때 며칠만 멀쩡하고 곧바로 접착제와 함께 썩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썩은 벽지는 검은 콜타르처럼 끈적이고 얼룩얼룩했다. 결국 반년도 못 가, 벽지는 고구려 벽화보다 더 모양새가 심오하게 돌변했다. 통풍이 안 되는 장롱 뒤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방이 썩고 곰팡이 핀 벽지는 흉물스럽게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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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살면서 폭우가 쏟아질때면 남편과 나는 긴장했다. 그날도 강풍에 게릴라성 폭우 예보가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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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함께 며칠간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예보만 나오면 나와 남편은 무척 긴장했다. 햇살이 눈부신 날에도 장판 밑은 방수가 되지 않아 물이 흥건했다. 매일 두꺼운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 물기를 짜내고 선풍기를 쏘이면 잠시 마르는 듯하다 다시 방바닥에 물이 고였다. 그런 방이 장마철엔 오죽하랴. 다행히 그 집에 사는 동안 밤마다 하수구를 뚫어 큰물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었다. 장판 밑 습기제거에만 전념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강풍에 게릴라성 폭우예보가 있었다. 돌 지난 아들을 다독여 재우고 밤늦도록 현관을 드나들며 남편과 나는 교대로 하수구가 막히지 않는지 살폈다. 비는 밤새 퍼부었고 천둥과 번개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 큰 탈 없이 새벽이 밝아오는 듯했다. 남편도 나도 더 이상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잤을까? 잠시 눈을 떠보니 창문 밖이 훤한 아침이었다. 밖은 여전히 천지개벽하듯 폭우가 퍼부었다. 한여름이었건만 몸이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다가 깼다. 내 옆에 곤히 잠든 어린 아들도 추운지 몸이 새파랗다. 아기를 품에 안고 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다시 눈을 감으려던 그때였다.

‘이게 뭐지…? 지금 내가 꿈을 꾸나?’ 차디찬 구름 위에 몸이 붕- 뜬 것처럼 뭔가 이상했다. 하룻밤 새 방바닥과 천장이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랄까…? 멀쩡하던 천장이 움직이는 기분까지 들었었다.

나는 아기를 안고 누운 채로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바닥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는 아기를 강보에 싸안고 분유를 타려고 일어났다. 주방 쪽으로 나가려고 방바닥에 한 발을 내딛자 순간, 내 발이 한참 아래로 푹! 꺼졌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장판이 배처럼 둥둥 떠 있었다. 순간 나와 아기가 물 위로 첨벙 넘어질 뻔했다. 그것을 모른 채 그 위에 카펫과 이불과 요를 깔고 잠을 자고 있던 것이었다.

“여보! 빨리 일어나! 방이 물에 잠겼어! 어떡해!” 나는 급히 애 아빠를 깨웠다. 장롱 다리 부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장판은 물 위로 둥글게 들려있었다. 어린 아기의 몸과 내 몸도 이불까지 물에 젖어 있었다. 하마터면 세 식구가 감전사로 죽을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보았다. 주방에 슬리퍼가 둥둥 떠다녔다. 현관 밖 하수구 구멍은 낙엽이 쌓여 꽉 막혔고 우리 방으로 물이 콸콸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나도 수재민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급히 아기를 이층집 아기 엄마네로 옮겨 놓고 하수구를 파냈다. 그러자 흙탕물이 다시 하수구 속으로 쿨럭쿨럭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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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잠긴 집은 물을 아무리 퍼내도 수위가 줄어들지 않았다. 사진은 인천 남동구 구월동 수해복구 작업 모습.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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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젖은 장롱과 가재도구들을 보니 앞이 캄캄했다. 소중한 내 아기의 몇 개 안 되는 장난감도 흙탕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장판을 걷고 가재도구들을 치우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세 식구가 살던 네모난 방은, 네모난 저수지가 되어 있었다. 물은 퍼내도 퍼내도 수위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 후, 그 집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이사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돈을 모아 더 위로 또 더 위로, 이사를 수없이 다녔다. 그렇게 반지하 월세방을 벗어나는데 십년이 넘게 걸렸다. 검은 늪처럼 내 발목을 옥죄는 가난과 끈질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무수한 직업을 거치고 다양한 부업을 하면서도 내게 두 아이는 언제나 희망이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남매는 놀랍게 성장해 멋진 성인이 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이웃들이 떠올라 가슴 아프다. 얼마 전 관통한 태풍피해로 슬픔이 클 분들도 많을 것이다. 부디 힘내시길 바란다. 그분들 남은 삶에 더 맑은 햇살이 비치고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웃을 일만 넘치길 바란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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