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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조현병 딛고 다시 시작한 삶…"마음이 조금 아픈 사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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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재단 물품 판매점서 8년째 근속 정해미씨 "조현병 환자 모범 되고파"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치료 과정…방황하는 이들의 희망 되고 싶어"

연합뉴스

매장에서 옷 정리하는 정해미씨 [밀알복지재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병을 인정하고 난 뒤 불만이 가라앉더라고요. 나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물품 판매점 직원 정해미(38) 씨는 8년째 근속 중이다. 조현병 환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팀 12명 중 최장기 근무 직원이기도 하다.

정씨는 과거 자신이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질병이 찾아왔고 이를 받아들인 후 삶의 전환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1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아기 때부터 뇌전증(간질)을 앓았고 23세부터 조현병, 30살 때부터 당뇨를 앓았다"며 "왜 자꾸 내게 병이 생기는지 이유도 몰랐다"고 했다.

정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평범하게 자랐다. 친구에 대한 열등감과 미움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다들 그러는 줄' 알았다. 잠이 들 때 가끔 '윙'하는 환청과 레이저 불빛 같은 환시가 보였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23세 때 뇌전증 발작이 재발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방황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임상심리사와 상담할 때도 '내가 왜 상담을 받아야 하나' 싶어 시큰둥했어요. 취업에 도전해 영어유치원 활동 보조, 사무 보조, 미싱사 보조 등으로도 일했지만 번번이 6개월을 넘기지 못했죠."

정씨는 "병도, 내가 처했던 상황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더 나은 월급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늘 불만스러웠다"고 말했다.

그 시절 만나던 남자친구와 결혼했지만 1년 만에 남남이 됐다. 환경과 성격 차이를 겪으면서 스트레스로 정씨의 상태는 더 악화했다.

증상이 심해지자 복지관과 지역 정신건강 센터에 나가게 된 정씨는 자신처럼 아픈 이들을 자주 접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

"'나도 저들처럼 그저 아픈 사람이구나. 나약한 인간일 뿐이구나'라고 인정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삶에 대한 불만이 가라앉고 마음도 많이 바뀌었지요."

연합뉴스

[연합뉴스TV 제공]



마음을 다잡아가던 2012년 1월 장애인고용공단 홈페이지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2012년 1월부터 굿윌스토어 밀알 송파점에서 일하게 됐다. 굿윌스토어는 기업이나 개인에게서 기증받은 물품을 파는 업체로, 밀알복지재단의 장애인 일자리사업 중 하나다.

정씨는 "요즘에도 가끔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있지만 약을 꾸준히 먹으면 괜찮다"며 "마음은 남들보다 조금 아프지만 일상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고 말했다.

꾸준히 일하게 되면서 그는 꽃꽂이도 배우고 사이버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는 자신이 조현병 환자로서 모범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자 치료 과정"이라며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저와 같이 방황하는 동료들에게 희망이 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에는 누구보다 마음이 아프다.

정씨는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신과는 미쳐서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가는 곳이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현병 환자로 등록하고 활동해도 남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돼야 조현병 환자 범죄 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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