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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배터리 소송 치킨게임…LG-SK의 '골든타임'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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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끝까지 가보자'는 LG…'대화·협력이 생산적"이라는 SK

소송전, 양쪽 모두에 불안요소…'치킨게임'서 벗어날까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지난 8월30일 오전 업무를 시작한 기자는 매우 특이한 보도자료 하나를 메일로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특허를 침해한 LG화학을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히는 내용이었다. 그날 한국의 모든 언론이 주목한 'LG-SK 2차 배터리 전쟁'의 시작을 알린 보도자료였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자료는 이미 완료된 일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보통은 '어디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알리지, '어디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알리는 일은 없다. '예정'을 미리 밝혔다가 한치 앞도 모르는 경영 상황이 달라진다면 기존의 보도자료는 거짓말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SK이노베이션의 보도자료는 '제소했다'가 아닌, '제소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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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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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이례적인 이 제목은 그동안 두 회사 사이의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을 여실히 드러낸 문구였다. 지난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한 이후, 양측은 한쪽으로는 소송전을 준비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CEO 간 합의를 위한 실무 협상을 지속했다. 여기에서 LG화학은 SK에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 일정 금액의 손해배상이 대화 시작의 전제 조건이라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자료 배포 전날(8월29일)까지도 양측은 협상을 이어갔지만, LG화학 측의 조건이 '백기투항을 하라'는 굴욕과 다름없다고 본 SK그룹은 29일 저녁 LG를 제소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보도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기존 LG 측의 제소에 대응 차원으로 해당 소송을 준비만 했었지만, 이젠 대화의 여지가 없으니 그대로 알리겠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제소할 예정'이라는 이례적인 보도자료가 나온 배경이다. 이후 SK는 지난 3일 실제로 ITC에 소장을 접수했다.

두 회사의 감정싸움이 심화되자 정부가 부랴부랴 갈등 해결에 나섰지만 쉽게 진화되지 않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7년에도 같은 문제로 소송전을 치렀는데, 당시에는 정부의 중재로 화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SK이노베이션이 맞소송을 제기하자 LG화학도 특허 침해 소송을 추가 검토하는 등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합의를 위한 양사 CEO의 회동도 이뤄질지 아직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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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쏘울 EV(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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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이렇게 강대강(强對强) 대결로 치닫는 건 갈수록 심화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의 전쟁이 국내로 옮겨붙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기차 시장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인데, 배터리는 전기차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향후 몇 년에 따라 이 시장의 선점 여부가 갈릴 수 있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보는 산업계의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국내 기업끼리 불필요한 소송을 벌이며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의견과 기업의 지식재산권은 어떻게든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자는 SK이노베이션, 후자는 LG화학의 입장과 닿아있다.

실제로 SK는 지난달 30일 LG에 소송을 제기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말미에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생산적"이라고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반면 LG는 지난 3일 보도자료에서 "SK가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ITC를 통해 명백히 밝혀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고 답했다. SK가 자신이 있다면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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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LG화학 본사 로비. 2014.6.10/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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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가 옳은지에 대한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이번 소송전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어느 쪽이 이긴다면 남은 한 쪽은 상대방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것이고, 이는 앞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판로가 제한된다는 걸 의미한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아무리 싸고 품질이 좋아도, 추후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인정돼 사용이 제한될 수 있는 배터리를 굳이 지금 사들일 필요가 없다. 기업이 가장 무서운 건 이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기술 표준을 선점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최근 들어 급속히 발전하는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누구 하나가 업계를 주도하지 못하는 '춘추전국시대'다. 배터리 형태도 다르고 업체마다 규격도 다른 시장 초기 상황에서, 자사의 배터리 점유율을 빠르게 늘릴수록 기술 표준을 선점해 추후 유리한 고지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특허 소송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다른 배터리 기업에게 시장 선점을 내줄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의 몇 개월이 두 회사 운명의 중대한 기로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직 성사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현재 양측은 추석 연휴 이후 CEO가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이 치킨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극적인 합의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두 회사의 '골든타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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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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