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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종교 아닌 '신념 병역거부'에 엇갈린 판결…그때그때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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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거부자는 유죄·예비군 훈련 거부자는 무죄

개인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유·무죄 기준 '모호' 지적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비폭력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20대가 올해 초 수원지법서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인 가운데 이후 비슷한 신념에 근거해 입대를 거부한 또 다른 20대는 같은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의 윤리 의식에 기반해 병역거부를 주장한 두 사람에 대해 한 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자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 잣대가 모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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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아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첫 무죄 (CG)
[연합뉴스TV 제공]



15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형사5단독 이재은 판사는 지난 2월 예비군법 및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8)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예비군 훈련 및 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 준비를 위한 군사훈련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훈련에 불참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며 "또 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유죄로 판단되면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는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은 종교적 이유를 든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가 아닌 개인의 신념을 바탕에 둔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였기에 상당히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폭이 종교를 넘어 윤리·도덕·철학·사상 등 다양한 범위로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는 A 씨는 전쟁 등 비상 상황이 오더라도 비폭력주의를 견지하겠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다만 A 씨는 자신의 양심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자료, 예컨대 집총 거부와 관련한 사회단체 활동 내용 등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사회적 활동을 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A 씨 항소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A 씨와 비슷한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한 또 다른 20대는 실형을 받았다.

수원지법 형사6단독 이종민 판사는 지난 5월 비폭력 주의자를 자처하며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군에 입대하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B(28) 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형사4부(주진암 부장판사)도 지난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B 씨에 대해 병역거부와 관련한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유죄를 선고하고 동일한 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까지 병역거부에 대한 신념을 외부로 표출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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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연합뉴스TV 제공]



A 씨는 예비군 훈련을, B 씨는 입대를 거부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비폭력 주의자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볼때 유사한 사례로 여겨진다.

비폭력주의에 대한 신념을 외부로 표출하는 등의 행위가 달리 없었던 점도 두 사람이 비슷하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판이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신념에 뿌리를 두고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병역거부자의 케이스가 모두 달라 여전히 판단 기준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가려낼 명확한 기준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단을 모두 법원에 맡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도 하루 속히 이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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