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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읽기] ‘좌파’ 아닌 강남좌파 / 조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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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형근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유럽에서는 좌파 지식인들도 시원한 알프스로 한달쯤 여름휴가를 간다고. 휴가가 기니까 쉬엄쉬엄 글도 쓰지. 그렇게 쓴 글을 우리 같은 제3세계 인간들이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는 거야. 잡혀갈까봐 이렇게 몰래 숨어서.” 대학 시절, 이념서적 공부 자리에서 누군가 불쑥 던진 말이었다. 그때의 알싸한 느낌을 아직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유럽에서 공산당이 합법인 것도, 신봉하는 이념 연구로 대학교수 자리를 얻는 것도, 알프스로 휴가를 가는 것도 그들의 잘못일 리가 없다. 응당 성취해야 할 권리일 뿐. 그래도 괴리감까지 어쩔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자칭 제3세계인들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니어서, 이른바 ‘캐비어 좌파’에 대한 서구 사회의 삐딱한 시선의 역사는 깊다. 주로 지식인, 전문가, 문화예술인 같은 직업군에 포진해온 이들은 자기 계급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지지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곤 했다.

물론 ‘캐비어’라는 수식어가 상징하듯 이들의 이념 지향과 누리는 삶 사이의 괴리는 종종 좌우 모두에서 비판받았다. 이들은 민중을 사랑하지만 민중의 운명을 공유할 마음은 없고, 평등 지향의 공립학교를 옹호하지만 자기 자식은 이름난 사립학교로 보내며, 현실의 유권자들을 만나 땀 흘려 설득해 본 적은 없으면서 좌파 정치인들에게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는다.

프랑스의 언론인 로랑 조프랭의 <캐비어 좌파의 역사> 속 구절들이다. 한국의 강남좌파와 판박이 같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비판은 특정 개인을 넘어서 86세대 전반에게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남에 못 들어간 나 같은 사람도 그 언저리에서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사실 강남좌파 이전에도 지식인의 이중성은 늘 비판거리였다. 여론의 대세를 거스르는 생각이겠지만 오늘날 비판적 지식인을 둘러싼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의 말과 삶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라기보다는 차라리 너무 작은 데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 비판담론의 시야가 미국 민주당의 기회 평등론 수준에 머물고, 잘해봐야 복지 강화의 온건 사민주의 정도로 얌전해진 지 오래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능력대로의 ‘불평등한’ 분배라는 자유주의 평등론 비전이 진보개혁담론을 대표한다. 강남좌파의 비전이기도 하다. 이 비전에서 빠져 있는 것은 이미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능력(자산) 자체의 불평등을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한국 사회는 형식적으로 기회가 평등하다고 해서 실제로 기회가 평등한 사회가 이미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고등학생 누구나 학술논문 제1저자가 될 수 있겠지만 아무나 그 기회를 이용할 수는 없다. 수능 100% 체제라도 다르지 않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고도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 있고, 치밀하게 네트워크화되어 있어서 과정의 공정함이 결과의 정의로움을 보증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 아니 공정하게 경쟁하면 불공정한 결과가 나온다.

재벌과 기득권이 흠모하는 자유지상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소유권리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초의 취득이 정의롭지 않다면 교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직은 부정의한 최초 취득과 이전으로 가득 찬 미국 역사를 고려하면 적어도 한번은 급진적인 자산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한국에서 기회 평등론의 대가로 칭송받는 존 롤스는 자신의 초기 이론을 수정하면서 복지 자본주의 체제조차 시장이 낳는 불평등을 교정할 가능성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결국 부와 자본의 소유권을 분산하는 급진적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한국의 개혁담론이 가장 결여하고 있는 좌파적 비전을 이들 자유주의자들이 이미 오래전에 내놓았다. 강남좌파가 문제인 건 강남에 살아서가 아니다. 더 이상 좌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들의 온순한 비전을 개혁의 대표 담론이 되게끔 한 ―만약 존재한다면― 한국 좌파의 무능함이 문제다.

86세대의 젊은 시절 베스트셀러 <강철군화>의 저자 잭 런던은 20세기 초에 가장 성공한 상업작가이기도 했다. 강렬한 사회주의 신념과 호화로운 삶 사이의 모순에 괴로워하다가 사실상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 선택을 지지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의 말은 자기 삶을 위협할 만큼 충분히 급진적이었다. 나의 말은 내 삶을 위협하고 있을까?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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