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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아침을 열며]‘형편에 맞는 꿈’은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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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에 중2였던 소녀의 눈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응시한 영화 <벌새>를 보다 나에게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등교시간이 오전 7시까지였다. 고3은 오전 6시30분으로 당겨졌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인 학교였다.

경향신문

평상시처럼 새벽같이 등교해 아침자습을 마치고 나니 수업하러 들어온 선생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오전 7시40분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추락한 버스에 등교 중이던 여고생 8명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무거운 교실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던지 그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덧붙였다.

“그 학교 등교시간이 우리처럼 빨랐다면 그 시간에 성수대교를 지나는 버스를 탈 일은 없었을 텐데. 너네는 (등교시간에) 불만이 많겠지만, 원래 등교시간은 빠를수록 좋은 거야. 다 나중에 보답받을 날이 올 거다.”

그의 말은 마치 1990년대의 모순이 응축된 한 장면처럼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된 학생들을 애도했을 그의 속마음까지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건을 통해 그가 제자인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교훈이 고작 그런 정도였다는 것에 할 말을 잃었을 뿐이다. 달리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작은 부조리를 거대한 부조리로 합리화하며 순응했던 그 시대의 자화상.

어차피 그런 시대 위에 쌓아 올려진 2019년이니, 지금의 사회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현실의 부조리에 순응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부적절한 교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솔직해진 것뿐이다.

최근 한 지방의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형편에 맞는 꿈을 가지라”고 훈시해 논란이 됐다고 한다. 학생들이 “가난하면 꿈을 크게 갖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발하자, 그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꿈을 고민할 때 자신의 능력과 (집안) 형편을 함께 고려하라는 취지였다. 일부 내용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절대 희망을 갖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말 같다.

그러나 진짜 뼈아픈 것은 그의 말이 부적절하긴 했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데 있다. 성수대교 붕괴로 학생들이 희생된 것은 너무 당연하게도 등교시간 탓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이미 한물가기 시작한 ‘사당오락’의 법칙을 강조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끌어다 붙인 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문제를 계기로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공고한 계급 대물림은 “노력은 보답받을 것”이라던 1990년대의 힘없는 교훈을 “형편에 맞는 꿈을 가지라”는 뼈아픈 충고로 변화시켰다. 조 장관 딸의 입시 문제에 맹공을 퍼붓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아들 제1저자 청탁 논란에 휩싸였으니 점입가경일 따름이다.

‘조국 대전’이 쏘아올린 공은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대입제도 문제를 다시 도마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이 형편에 맞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째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교육개혁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작 우리 사회가 언제나 ‘형편에 맞는 꿈’만 꿔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 서열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문화자본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부유층 아이들이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긴 어렵다는 한계를 받아들인 후 형편에 맞는 수준에서만 고치려고 하니,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정시 비율 논쟁에만 함몰된다.

최근 ‘한국사회학’에 실린 논문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한국교원대 문정주·최율)는 “입시제도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흐름이 기회의 평등이나 평가의 공정성 같은 능력주의의 속성으로 상징돼 왔지만, 계층 간 투쟁의 전략적 측면은 간과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소수의 최상층은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물적·인적 자원 공세로 우위를 점하고, 하층은 입시제도 논쟁에서 배제되기 쉽다. 결국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상층이 얼마 남지 않은 합격자 쿼터를 차지하기 위해 중간층과 치열한 입시경쟁을 벌이면서 입시제도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계급투쟁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사회의 형편 안에서, 각자 계층에 따른 형편에 입각해, 유리한 입시제도를 선점하고자 투쟁하는 끝없는 개미지옥. 대학 서열화, 그것도 그냥 서열화가 아니라 수도권의 주요 몇개 대학만 포식자로 군림하는 이 ‘첨탑형’ 대학 서열화 구조를 재편하지 않고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형편을 뛰어넘는 더 큰 상상력이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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