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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검찰개혁은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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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다. 그중 피부로 느껴질 만한 것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 정도 아니었나 싶다. 그 외에는 매번 거의 같은 내용으로 개혁을 운위했으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개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정치적 중립성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경향신문

검찰개혁에 한정해 보면, 개혁 좌절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력 자체에 있다. 검찰에 대한 편향적 인사나 검찰권의 행사를 정권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개혁을 어렵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법조라는 직역의 체질이 개혁에 친하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세 직역을 통틀어 법조 삼륜이라고 이른다. 그 구성원들은 학생 시절 우등생과 모범생의 체험을 거쳐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그중 판사나 검사가 된 이들은 다시 도제식 훈련을 받고 조직의 논리와 코드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리고 동기생들 간의 경쟁에 부딪히게 되고 인정 욕구에 시달리면서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어 간다. 조직은 이들을 보호한다. 늘 비난받는 제 식구 감싸기가 그 보호의 예다. 변호사가 된 이른바 전관(前官)까지 아울러 학력과 경력으로 끈끈한 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규모는 작아도 강한 세력은 외부세계가 건드리기 어려운 결속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법조인들은 대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또 대부분의 판사와 검사들은 태생적으로 부지런하고 일에 지쳐 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을 일단 논외로 친다면,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체로 공정하고 양심적이며 업무 처리도 법에 기속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일하는데 무슨 개혁이 필요하단 말인가라는 의식이 없을 수 없다. 아마 자신이 정치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상당수 판사나 검사들은 정치권에서 들고 나오는 개혁에 부정적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법조인들에게 개혁을 주문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법조 직역이 가진 전문성이다. 비전문가가 뭐라 하다가는 자칫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에 부딪힌다. 물론 이런 전문성은 내부적으로 독선을 낳을 위험이 있고, 법조인들의 자의식을 키운다. 법학자 김두식은 저서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이들 세 개의 직역을 ‘신성(神聖)가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손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그럼 조직 내의 인물이 개혁을 주도한다면 어떨까. 이것도 쉽지 않다. 우선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그런 비판적 안목을 기르기 어렵다. 조직에서 출세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비판적 마인드는 줄어든다. 법원이나 검찰을 떠난 사람에게도 ‘친정’을 욕하는 짓은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자칫하면 배신행위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위험이 있다. 조직의 힘을 축소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그를 압박할 것이다.

왜 어느 정권도 검찰개혁을 시도했으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검찰이 가지는 이런 조직의 논리와 힘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 집권여당과는 정치적 입지를 달리하는 세력이 이해관계에 따라 검찰의 입장을 옹호한다. 그것이 다음의 집권 시에 반작용으로 다가오더라도, 당장의 이해타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라면 공격할 엄두도 못 냈을 국가기관을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여러 차례 수사하고 기소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정보기관이나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 등 권력의 정점마저 수사해 기소했고 마지막으로는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 기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들을 견제할 경쟁자도 보기 어렵다. 수사에 성역은 없어지고 이제 검찰은 가위 무소불위의 조직이 되었다. 이런 데다가 검찰은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이 가지는 한계와 약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전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앞서 벌어진 수사를 놓고 국무총리가 “검찰이 정치를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라고 한 말은, 당위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실상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과거 발언은 긍정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같은 자리에서 한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는 또 하나의 발언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검찰 조직의 위상과 권한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검찰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수사는 일단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당부한 대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도 똑같은 자세’를 취한 셈이며, 실질이야 어떻든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여권이 생각하는 검찰개혁 중 제도를 고치는 일은 제한적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 축소나 특수부의 축소가 그렇다. 대통령이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는 것이 검찰개혁이라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위헌적이다 못해 엉뚱하지만, 검찰에 대한 인사권 행사만으로 검찰개혁에 실효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대다수 검사들이 수긍할 만한 탕평적 인사가 아니면 그런 인사는 조직적 반발을 살 것이다. 검찰은 단단한 바위와 같다. 검찰개혁에는 그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깊은 이해와 폭넓은 지지를 얻는 것과 신중하고도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정치력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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