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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마굿간에서 신을 만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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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후 44년 역사 연극 ‘에쿠우스’ / ‘알런 계보’ 이은 류덕환 4년 만에 열연



세계일보

많은 스타를 배출하고 다시 시작된 국내 초연 44년 역사의 연극 ‘에쿠우스’.실험극장 제공


연극 ‘에쿠우스’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찔러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과 그를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이야기다. 1975년 9월 서울 운니동 한 소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후 44년 역사를 쌓으며 그 어느 연극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연극·영화 ‘아마데우스’ 원작자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선 주인공 알런 역에서 송승환, 정태우 등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1990년 무대가 대표적이다. 다이사트 역을 맡은 신구와 함께 연극 경력 1년 차인 최민식이 알런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으며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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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도 마찬가지다. 1973 영국 초연 이후 많은 스타가 에쿠우스로 이름을 알렸다. 대배우 앤서니 홉킨스 연극 데뷔작이며 ‘해리 포터’ 다니엘 래드클리프도 알런 역을 맡으며 연기 변신을 했다.

피터 셰퍼는 친구로부터 “말 스물 여섯 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이 있다”는 짤막한 이야기만 듣고 2년 반에 걸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명배우로 통하는 알런 계보는 지금은 배우 류덕환에게 이어져 있다. 2009년 처음 에쿠우스 출연 후 입대 전인 2015년 다시 한 번 알런 역을 맡았던 류덕환은 지난 7일부터 다시 마구간에서 자신만의 신을 영접하고 있다.

지난 10일 공연장에서 만난 류덕환은 ‘17세 소년 알런’ 그 자체였다.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숨 쉴 곳 찾지 못하다 말(馬·라틴어 에쿠우스)에서 영혼의 위안과 신 내림의 황홀경을 체험하는 순수한 소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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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우스에서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한 장면은 역시 1막과 2막 절정을 이루는 마구간 장면이다. 가면을 앞세운 특유의 의상·분장과 몸짓으로 완벽하게 말을 연기하는 코러스들은 위엄 서린 신(神)으로서 무대를 지배한다. 마구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밝히기 위한 의사 최면에 빠진 알런은 말과 교감하며 황홀경에 이르고, 결국에는 말의 눈을 찌르는 것으로 스스로 만든 신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류덕환은 결코 쉽지 않은 이 두 장면 연기를 통해 광기와 이성, 신과 인간, 원초적인 열정과 사회의 규칙 사이에 놓인 백지장 같은 영혼을 잘 표현했다. 서울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11월 17일까지.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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