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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렌즈타고 한국여행] 천년 경주의 역사가 프레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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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Gemma Ferrando/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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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이 깊게 밴 목조건물이 풍기는 짙은 분위기는 스페인에서 느끼기 어려운 이국의 것이다. 여기서라면 셔터스톡에 더할 수 있는 특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북적이는 도심을 벗어나 보다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한참, 창밖 풍경은 어느덧 도시 티를 벗고 어엿한 시골이 되어 있었다. 남편 제레미와 에이브릴은 이미 눈을 붙인 지 오래다.

경주까지 쉴 새 없이 달렸다. 작지만 많은 역사를 담고 있는 매력 넘치는 곳이다. 서울 조계사에서 보낸 시간이 인상 깊었기에 불국사를 향하기로 했다.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품고 있다니! 내심 기대가 컸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에이브릴은 푹 잤는지, 한층 더 똘망똘망한 눈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기자기한 시내를 벗어나니 쭉 뻗은 도로 옆으로 샛노란 황화코스모스 밭이 펼쳐진다. 사이사이 사람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유럽에서 본 꽃밭도 아름다우나, 한국의 황화코스모스는 백일홍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그렇게 가을 내음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 사이 불국사 앞이다.

궁과 절이 주는 느낌은 서로 다르다. 궁이 땅 위의 것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면, 절은 하늘 위 무언가를 기리기 위한 것 같다. 돌계단을 지그시 밟고 올라가다 보면 금세 다른 세상에 온 듯 알 수 없는 정적에 둘러싸인다.

매일경제

Gemma Ferrando/Shutterstock


문턱 너머 가을바람이 들친다. 더불어 실려 오는 풍경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시 문지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한참을 앉아 있었을까, 에이브릴이 '어부어부' 손을 뻗는다. 아빠를 찾나 싶어 뒤돌아보니 천장에 연꽃 형상을 한 등불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관심을 끌었으리라.

사락사락. 곳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사찰 이곳저곳 한데 모여 알록달록 지붕을 이루는 등불이 참이나 맘에 들었나 보다. 연신 손을 위로 뻗으며 옹알옹알 감탄사를 내뿜는다. 제레미는 그 모습이 여간 귀여웠는지 에이브릴을 품에 안고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그런데 사진을 보아하니 가장 신난 건 제레미 본인이 아닌가. 미소를 자아낸다.

이제 4개월 된 에이브릴이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하리라. 다만, 여행의 행복했던 순간을 후일에 기억하길 바라며 나와 제레미는 오늘도 어김없이 셔터를 누른다. 엄마가, 아빠가 매순간 전하고 싶었던 소중한 마음이 부디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기길.

[젬마 페란도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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