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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39)목민심서 ‘형전’ 편 청송-목민관이 율신해야(律身·몸가짐을 규율) 소송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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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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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조 후보자의 딸 입시 문제부터 시작해 장학금, 사모펀드 등 여러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의 후보 적격성 문제를 두고 여론은 팽팽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국 후보자는 ‘사법개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조정 법제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을 통해 사법개혁이 완결되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하고 범죄 수익 환수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역시 사법개혁은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목민심서 12편 중 9번째의 ‘형전’은 사법개혁과 관련된 내용을 폭넓게 다룬다. 특히 형전에는 공정한 재판과 수사에 대한 다산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수사와 재판 책임을 함께 지닌 목민관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어떤 능력과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 조항이다.

▶‘청송(聽訟)’이란

▷소송사건을 심리하는 일

수사와 재판이 분리되지 않았던 구시대 사법제도에서 목민관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다산은 억울한 죄인이 나오지 않도록 수사와 재판의 기술은 물론 목민관 스스로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주로 사회적 약자가 많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물론 죄인에게도 긍휼(불쌍히 여겨 돌봐줌)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입장이다. 그들도 개과천선하면 일반인과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작정 비난하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산은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입각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는 죄가 확정되기 전에 관용을 베푸는 수사와 재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범죄자는 가난하고 권력에서 소외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혹은 교양 부족과 사리 판단 미숙으로 범죄에 빠지는 일도 있다. 다산은 배려의 마음으로 수사하고 재판해 범죄자가 반성하고 뉘우쳐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봤다. 수사와 재판에 종사하는 사람이 목민심서 형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형전의 첫 번째 조항은 ‘청송’이다. 청송이란 용어 해석부터 필요하다. 이 단어는 본디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청송장(聽訟章)’에서 유래한다. 소송 당사자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형량을 정하는 일이니, 오늘로 보면 소송사건을 심리하는 일이다. 전통시대인 유교주의 사회에서는 목민관 업무 중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로 이른바 ‘수령7사(守令七事)’ 가운데에도 ‘사송간(詞訟簡)’이란 조항이 들어 있다. 목민관이 선정을 베풀어 관할 구역 내에서 송사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수사와 재판 업무에 과도하게 시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송은 목민관 고과평가에서도 중요한 내용의 하나였다.

다산은 소송사건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수사관이면서 동시에 재판관인 목민관이 인격과 교양을 갖춰야 함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다산은 “청송의 근본은 성의(誠意)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신독(愼獨)에 있다”며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생명을 담보하는 소송사건에서 기본적으로 정성스러운 생각부터 지니라고 했다.

유교 경전인 ‘대학’ ‘중용’ 핵심 사항인 성의와 신독을 통해 공평하고 정직하며 균형감각을 지닌 인격자가 될 때 제대로 청송할 수 있다. 그래야 수사와 재판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대원칙이다.

다산은 공자 뜻을 받아들여 청송의 목적을 “(좋은 정치를 통해) 쟁송(爭訟)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必也使無訟乎)”에 뒀다. 목민관의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통해 교화를 받은 일반인이 사건을 일으키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인(聖人)은 언제나 신독과 성의를 간직해 몸을 닦는 생각만 함으로써 백성들은 그분의 앞에서 우러러보고 두려워해 감히 사실이 아닌 것을 진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백성을 교화하는 지극한 효험이다.”

목민관이 높은 수준의 인격과 도덕성을 갖추면 그 고을에서는 쟁송 자체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오늘날 수사관이나 법관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이다.

▶쟁송이 줄어야 좋은 목민관

▷졸속 수사와 재판을 경계하라

쟁송을 줄여야 한다는 다산의 주장은 계속된다.

“다음은 율신(律身·자신의 몸가짐을 철저히 규율함)이다. 훈계하고 가르치며 억울함을 풀어주면 또한 쟁송이 없어질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 소송 당사자 누구도 억울함이 없을 때에만 소송사건은 끝나고 이런 올바른 재판과 수사가 이어지면 소송사건은 자연히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졸속한 수사와 재판을 경계했다. 다산은 “소송사건이 줄어들게 하려는 사람은 그 심리(審理)가 반드시 더디게 되기 마련이니, 한번 판결한 뒤에는 그 소송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일을 보는 것이 재빠르고 응답하는 것이 물 흐르듯 거침이 없어 책상 위에 처리할 서류가 없어진다면 또한 기쁜 일인 듯하지만, 그러나 바삐 서둘러 가는 열에 아홉은 착오를 일으킨다. 정밀하고 자세하며 침착하고 무게 있게 처리함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줄 목민관으로서 해야 할 일은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에만 쟁송사건도 줄어든다고 했다.

“가로막혀 통하지 못하면 민정(民情)이 막히게 되니 와서 호소하고 싶은 백성으로 하여금 부모 집에 들어온 것과 같이 해줘야 훌륭한 수령이라고 말한다.”

판결하는 시기를 조정하는 일도 쟁송을 줄이는 중요한 요건이라고 했다.

“소송을 해결하는 시기는 마땅히 조금 늦춰야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이 한때의 분이 북받쳐 소장을 제출하려 하다가도 날짜가 조금 지나 노여움이 풀리고 사건도 가라앉으면 서로 화해해 관청에 다시 오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청송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다.”

이유 없이 소송을 지연시키고 재판과 수사를 미루는 일은 경계할 일이지만, 이유 있는 지연과 미룸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산은 천도(天道)와 관계되는 인륜, 골육끼리 쟁송에 대해 더 세심한 주의를 당부했다. “인륜에 관한 소송은 천도에 관계되는 것이니 제대로 판결해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중국에서 일어난 솔로몬 재판 같은 사건을 소개했다.

한나라의 황패라는 목민관의 이야기다. 황패가 영천 태수로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인데, 황패의 재판 내용은 이렇다. 어떤 부잣집에 형과 아우가 동거했다. 그러던 때에 맏동서와 손아래 동서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다. 그런데 맏동서는 중간에 유산을 했지만 숨기고 알리지 않고 지냈다. 뒷날 손아래 동서가 출산을 했는데 아들이었다. 그러자 맏동서가 그 아들을 취해 자신의 아들이라고 우기면서 3년에 걸친 소송이 일어났다. 누구의 아들인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유전자 감식이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판결해야 할 날짜에 이르자 황패는 두 여인을 불러 관청 마당에서 서로 다퉈 아이를 가져가라고 했다. 맏동서는 악착같이 아이를 붙잡아 끌어당겼으나 손아래 동서는 측은하게 여기고 제대로 아이를 당기지 못했다. 결국 맏동서가 이겼다. 그러자 황패는 실제 아들 어머니는 손아래 동서라고 판결해 사건을 종결했다는 내용이다. 아들 어머니가 돼 부유한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마음뿐인 맏동서와 재산과 관계없이 아들의 몸이 상할 것을 염려한 친어머니 입장을 황패는 제대로 간파했다. 이렇게 다시는 다툴 수 없는 명확한 결과를 얻어내야만 인륜 간 소송은 종결된다는 의미다.

“골육끼리의 쟁송으로서 의(義)를 저버리고 재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마땅히 엄하게 징치(징계해 다스림)해야 한다.” 오늘날 재산이나 치정 때문에 골육 간 쟁송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재벌가들의 왕자의 난이나 형제간의 싸움은 흔한 일이 됐다. 다산은 의를 버리고 재물에 눈이 먼 탐욕가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처벌해 인륜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깊이 새길 내용이 아닐까 싶다.

매경이코노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4호·추석합본호 (2019.09.04~2019.09.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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