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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툴제넥신 합병 무산-4500억 주식매수청구권 ‘주주반란’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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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제넥신(ToolGenexine)’ 탄생이 수포로 돌아갔다.

8월 20일 제넥신은 툴젠과의 합병계약을 해제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6월 합병 발표를 한 이후 두 달 만이다. 두 회사는 국내 유일의 유전자가위 원천특허 보유 기업과 면역치료제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텍의 합병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주주들의 이탈이 발목을 잡았다.

합병 무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식매수청구권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회사 측에 적정가에 매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두 회사는 7월 30일 각각 합병계약 승인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총 주주 3분의 1 이상,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찬성표를 얻어 합병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합병 후 툴제넥신 주식 보유를 원하지 않는 주주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8월 19일까지 진행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결과 주식 매수를 요청한 주식 수가 제넥신은 보통주 344만2486주와 우선주 146만5035주, 툴젠은 보통주 151만3134주에 달했다. 매수청구 가격이 제넥신 6만7325원, 툴젠 8만695원인 것을 감안하면 제넥신은 3304억원, 툴젠은 1221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물량이다. 당초 제넥신과 툴젠이 마련한 매수대금 1300억원, 500억원을 2배 이상 훌쩍 뛰어넘으면서 합병은 무산되고 말았다.

주식매수청구권이 대량으로 쏟아질 것이라는 것은 합병 발표 이후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8월 19일 기준 제넥신과 툴젠 주가는 매수청구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5만2500원, 5만3500원에 그쳤다. 다수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차익을 실현하는 쪽을 택했지만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회사 부담금 한계를 넘어서면서 합병이 무산돼 결국 차익 실현도 물거품이 됐다.

매경이코노미

기술력을 가진 두 바이오 기업의 합병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넥신과 툴젠은 주가 하락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이 쏟아지면서 결국 합병이 무산됐다. 사진 왼쪽부터 서유석 제넥신 대표, 성영철 제넥신 회장, 김진수 서울대 겸임교수, 김종문 툴젠 대표. <툴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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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악재에 두 달 새 주가 30%↓

▷합병가액 산정에 툴젠 주주들은 불만

주가 하락으로 인한 합병 무산은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합병 발표 이후에는 기대심리로 인해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을 웃돌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합병 발표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합병 발표일인 6월 19일부터 8월 19일까지 두 달간은 코스피지수가 2124.78포인트에서 1939.9포인트로 9% 가까이 떨어질 만큼 국내 증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 불안한 경제 상황이 계속된 데다 신라젠 사태 등 바이오 업계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제넥신과 툴젠의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합병 발표 이후 무산이 결정되기까지 두 회사 주가는 각각 22%, 33.7% 빠졌다. 8월 29일 기준 주가는 더 내려간 상태다.

합병 비율에 대한 투자자 불만이 컸던 것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 결정은 외부 회계법인 등의 평가를 거치지 않고 두 회사 CEO(최고경영자) 간 전격 합의로 이뤄져 가치 산정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7월 30일 열린 툴젠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주주들 지분율은 전체의 10%가 넘었다.

합병에 따른 프리미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반대 원인이다. 제넥신이 발표한 툴젠과의 합병 비율은 1 대 1.2로, 제넥신이 6만5472원, 툴젠이 7만8978원으로 합병가액이 산정됐다. 툴젠 주식과 교환되는 제넥신 신주(782만1259주)는 발행주식 수의 33.1% 수준. 합병 발표 당시 제넥신 시가총액이 약 1조4000억원임을 감안하면 툴젠의 가치는 5000억원 안팎으로 평가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합병 당시 코넥스 시장에서 툴젠의 시가총액이 약 5000억원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 셈”이라며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코스닥 상장을 노렸다 실패한 툴젠이 적정 합병가액 산정보다 우회상장 자체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본다. 결국 이래저래 불만이 있었던 툴젠 주주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차익 실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오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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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가진 바이오텍 합병으로 기대

▷인수합병 재추진 가능성 열어놔

제넥신과 툴젠 합병은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거의 최초로 외부로부터의 혁신적인 기술 도입을 위한 합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제넥신은 항체융합단백질 플랫폼 ‘하이브리드 Fc(Hybrid Fc)’ 기술과 DNA 백신 기술을 통해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제넥신의 지분 21%를 보유한 네오이뮨텍(NeoImmuneTech)이 하이루킨의 유럽과 미국 판권을 보유하고 글로벌 임상을 주도하면서 제넥신 고유의 파이프라인 부재가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반면 툴젠은 유전자가위에 대한 원천특허를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다. 후보물질 탐색 단계기는 하지만 체외에서 유전자 교정 후 투여하는 CAR-T 플랫폼, 유전자 줄기세포 치료제 등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서울대와의 특허권 이슈 등으로 인해 번번이 코스닥 진입에 실패하면서 상장에 목말라 있었다.

두 회사의 합병 결정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윈윈’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명선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제넥신은 툴젠의 기술력을 활용해 고유 파이프라인을 확장할 수 있고, 툴젠은 간접적으로는 코스닥 상장 효과, 직접적으로는 제넥신의 다양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보유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임상 진입이 좀 더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합병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이 컸던 만큼 두 회사 간의 협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증시 상황 개선 여부에 따라 합병 재추진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놨다. 김종문 툴젠 대표는 주주 안내문을 통해 “합병이 무산됐지만 연구개발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제넥신과 신약 공동 개발 등 협력관계를 유지해갈 것”이라며 “기업가치 증대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상장을 추진하고 제넥신을 포함한 인수합병(M&A)도 재추진하는 등 여러 대안들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과감한 M&A는 글로벌 빅파마의 생존 전략

R&D 효율성 높이고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 지름길

국내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제약·바이오 업체 간 인수합병(M&A)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글로벌 빅파마의 인수합병은 무서울 정도다. 특히 과거 먹거리 역할을 했던 주요 의약품 특허 만료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특허절벽에 직면하면서 빅파마의 인수합병은 생존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빅파마의 M&A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올 초에는 BMS제약이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회사인 세엘진을 740억달러(약 90조원)에 인수합병했다. 이를 통해 BMS는 항암제, 면역학, 심혈관질환 분야의 리딩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는 한편 세엘진의 다발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를 비롯해 연 10억달러 매출 규모 치료제 9개를 확보하며 종양, 면역, 심혈관계 분야에서 성장 잠재력을 갖추게 됐다. 뒤이어 일라이릴리의 80억달러(약 9조7000억원) 규모 인수합병 소식이 들려왔다. 표적항암제 파이프라인 확대를 위해 항암제 전문제약사 록소온콜로지를 사들인 것이다. 지난 6월에도 애브비가 엘러간을 총 630억달러(약 76조원)에 인수하는 초대형 딜이 성사됐다. 이를 통해 애브비는 보툴리눔 독소, 필러 등 연매출 80억달러 규모의 메디컬 에스테틱 시장을 장악했다.

끊임없는 인수합병과 기술 도입은 빅파마가 혁신성과 성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만 보더라도 한 해 15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Lipitor)는 지난 2000년 워너램버트(Warner-Lambert)를 인수하며 도입한 물질이다. 현재 화이자에서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도 2009년 와이어스(Wyeth) 인수로 손에 넣은 것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 M&A는 거래건수(1438건)와 거래액(3396억달러) 모두 최근 10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R&D 효율성을 높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과 매출 대비 R&D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복제약 등 경쟁약 출시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제품의 수명 주기는 줄어들고 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도 적극적으로 M&A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4호·추석합본호 (2019.09.04~2019.09.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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