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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R의 공포’ 확산…주식 매매 전략은 韓·中·유럽보다 美 성장주 보유가 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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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폭이 커지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경기 침체 전조냐 아니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국내 증권가에서도 주식 매수 타이밍을 놓고 시각이 엇갈린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거시경제 관련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은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다. 지난 8월 14일 세계 채권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yield curve inversion)’이 불거져 국제 금융시장 우려를 고조시켰다. 이는 보통 경기 침체 시작을 알리는 전조(前兆)로 받아들여진다.

이유는 이렇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기 채권금리가 단기 채권보다 높다. 채권 만기가 길수록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줘야 한다. 하지만 경기 전망 불확실성이 고조된다면 이런 현상이 뒤집힌다. 다수 시장 참여자들이 장기적으로도 경기가 나빠질 것을 예상한다면 금리가 상당 기간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된다.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채권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안전자산인 장기채를 확보해두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장기 채권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낮아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본 공급의 핵심 역할을 맡는 은행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되는 한 대출을 바짝 조일 수밖에 없다. 은행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예금)하고 이를 장기로 운용(대출)해 그 차이만큼 돈을 번다. 그런데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이 고조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은행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채권 회수에 나서기 시작하면 기업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금리 전문가인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7번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고 그 후 5~23개월 뒤에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금리 역전이 나타난 뒤 평균 5분기(1년 3개월) 후에 경기 침체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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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기 금리 역전 분분한 해석

미국 고용지표는 호조세 지속

연준 국채 싹쓸이 왜곡 지적도

그러나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은 과거 사례와 결이 다르다는 반론이 만만찮은 것이 사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超)저금리가 일상화됐기 때문에 이미 낮은 금리 수준에서 금리 역전이 일어나는 것만으로 과거처럼 경기 침체 전조로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경기 침체라고 보기에는 고용지표가 워낙 좋다. 미국의 7월 실업률은 3.7%로 지난 1969년(3.6%) 이후 50년 만에 최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주택가격이 올 들어 하락세기는 하나 급락세나 위기 조짐은 없다. 미국의 올해 성장률은 2.6%로 지난해(2.9%)보다는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의 기초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1.8%)보다는 여전히 높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양적완화(QE) 차원에서 미 장기 국채를 싹쓸이하며 장기 국채 몸값이 높아졌고(금리 하락), 이 과정에서 채권시장 수급을 왜곡한 것이 장단기 금리 역전으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연준은 양적완화로 불어난 보유 자산을 줄이기 위해 9월 말을 기한으로 미 국채를 내다 팔고 있지만, 여전히 연준이 보유한 미 국채는 2조달러(약 2400조원)어치에 달한다.

이런 논쟁이 글로벌 금융권에서 백가쟁명식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국내 증권가에서도 위험자산인 주식 매수 타이밍을 두고 서로 다른 전망과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외국계 IB(투자은행)에서도 미국의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긍정적인 기술지표와 완화적 통화정책 등으로 위험자산을 매입할 시기가 왔다고 밝힌 반면, 유럽계 UBS는 주식을 매도할 때라며 정반대 투자의견을 내놨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삼성증권이 주식 비중 축소 의견 쪽에 섰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당분간 위험회피 성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글로벌 자산배분 관점에서 주식, 원자재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낮추고 현금은 비중 확대로 2단계 상향 조정했다. 사실상 주식을 팔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오 센터장은 “단기적으로 불확실성 확대, 위험회피 국면의 연장인 만큼 글로벌 주식 비중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한다. 글로벌 주식 가격은 추가로 3~5%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지역·국가별로 글로벌 교역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성과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반 조건은 한국 증시에 불리해 일시적으로 코스피가 1900포인트를 밑돌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실적 대비 주가를 뜻하는 밸류에이션 저평가로 추가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 NH투자증권 등은 삼성증권과는 다소 다른 시각이다. 이들 증권사는 이른바 ‘R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일 필요는 없다고 권고한다. 논리는 간명하다. 장단기 금리 역전으로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이 한층 더 짙어지면서 경기 침체 우려 못지않게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 또한 공존한다는 논리다.

김환 NH투자증권 글로벌전략부문 애널리스트는 “미국 장단기 국채금리가 역전된 데다 중국과의 무역갈등으로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는 경기 침체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금리 인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 연준의 선제적 금리 인하 당시 경기회복 국면이 연장되고 주가 상승세가 지속됐던 만큼 이번에도 미국 주식시장의 양호한 흐름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래에셋대우 또한 같은 쪽에 섰다. 자산시장에서 무역갈등 피해보다 금리 인하 수혜가 더 클 것이라며 채권 대비 주식 선호도를 상향 조정했다. 박희찬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증시 전반적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완화했고, 특히 신흥국 증시 밸류에이션 부담이 더 크게 완화됐다. 중국은 기업이익 전망이 안정적인 점이 긍정적이고, 미국 공세 완화 징후도 플러스 요인이며, 한국은 영업이익 증가율 반등 가능성이 긍정적”이라고 봤다. 이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 증시도 최근 주가 조정과 금리 하락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을 일정 수준 덜었다.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의 하락세가 진정되기 시작한 것은 밸류에이션 부담을 낮추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KB증권은 미중 무역분쟁을 활용한 역발상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요약하자면 중국·유럽·한국 주식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비중 축소를, 미국 주식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비중 확대를 조언했다. 신동준 KB증권 상무는 “무역분쟁 우려가 고조되고 미국 연준과 시장 기대 차가 축소되는 시기를 활용해야 한다. 신흥국 증시의 비중 축소 의견을 유지하지만 이익 성장이 견고한 국가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디아, 베트남, 브라질 등에 대한 단기 중립, 장기 비중 확대 의견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KB증권은 원화 자산의 헤지를 위해서라도 미국 주식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릴 것을 조언한다. 신 상무는 “현 수준에서의 달러 추격매수와 주식 추가 매도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다소 비싸더라도 헤지용 국채 비중 확대는 여전히 유지해야 한다. 대대적인 통화완화가 유발된다면 단기적으로 국채금리는 급락할 것이며, 반대로 연준이 이번에도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글로벌 경제의 하방 위험은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5호 (2019.09.18~2019.09.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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