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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기고] 로마의 물 정복과 현대도시의 물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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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고대 유럽과 아프리카를 정복해 대제국을 이뤘던 로마 하면 전 국토를 따라 뻗어나간 돌로 포장된 도로가 떠오른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가 1500년 가까이 도시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획기적인 물 공급 시스템이 있었다. 인구 100만명의 도시 로마는 BC 312년 처음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로를 건설하기 시작해 총길이 492㎞의 수로 11개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로마 시민들은 자연으로부터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가정에서 편리하게 사용했고,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겼으며, 시내 곳곳의 아름다운 분수와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다.


로마가 도시의 번성을 위해 도로를 포장하고 물을 포함한 자연자원의 정복과 이용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 도시들에는 자연으로 물을 되돌려주는 '물순환 회복'이 물 관리 정책의 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산업화 이후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이 물이 투과하지 못하는 불투수층이 지나치게 증가하면서 자연상태의 물순환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상태의 물순환이란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거나 식물이 머금고 있다가 대기로 증발되는 것을 말한다.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많은 양이 불투수층을 따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면 수질오염과 지하수 고갈, 도시침수와 열섬현상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2010년 광화문과 2012년 강남역 일대에서 일어난 침수사고가 그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 대비 불투수 면적률은 7.9%로 1970년 3%에서 2.63배 증가했다. 수계와 임야를 제외하면 22.4%나 된다. 유럽 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불투수 면적률이 높은 유럽 국가는 몰타(16.15%)뿐이며 국토면적이 작은 네덜란드(7.35%)와 벨기에(6.04%)도 우리보다 낮다.


유럽연합(EU)은 불투수 면적률을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의 주요 지표로 관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선진국도 현대 도시의 지속가능성에서 물순환의 중요성 인식하에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소유 필지의 불투수 면적에 비례해 부과하는 '빗물요금제', 도심 내에 빗물을 땅 속으로 침투ㆍ저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빗물의 지면 유출을 최소화하고 자연상태의 물순환을 촉진하는 '저영향개발기법(LID: Low Impact Development)'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베를린 주정부는 매년 1%씩 불투수 면적률을 낮추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4년 비점오염저감계획서 작성 시 저영향개발기법을 포함하도록 법제화했으며 지방자치단체 LID 설치에 국고를 지원하는 '그린빗물인프라 조성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청주 오창산업단지와 전주 서곡지구에서는 '빗물유출제로화 시범사업'을 실시했고, 2015년부터는 세종 행복도시 5, 6생활권에 LID 적용을 추진 중이다. 올해 6월에는 환경부-국토부-한국환경공단-한국토지주택공사(LH)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3기 신도시를 필두로 향후 조성되는 신도시에는 LID를 기초 인프라로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LID의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대규모 도심에서 LID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시행한 '빗물유출제로화 시범사업' 모니터링 결과 LID 설치 후 빗물유출량이 24%, 수질오염을 야기하는 총부유물질은 21% 감소했다. 반면 지하수는 5%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도시에 LID를 적용하는 '물순환 선도도시 조성사업'은 이달 울산을 시작으로 안동, 광주, 김해, 대전 등 5개 도시에서 연이어 착공할 예정이다.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주거 및 상업지역, 관공서, 공원 등에 실시돼 물순환 체계 회복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로마가 자연으로부터 물을 끌어내고 훌륭한 상수도 체계를 기반으로 번영해왔듯, 물순환 선도도시 착공을 계기로 자연 상태의 건강한 물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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