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한국 첫 철도 경인선 개통 120년…기념행사 없는 이유는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인철도는 한반도 수탈 위한 일제 야욕의 산물"

'철도의 날' 경인철도 개통일에서 철도국 창설일로 변경

연합뉴스

경인철도 1차 기공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약 120년 전인 1899년 9월 19일, 독립신문은 3면 기사에서 바로 전날 경인철도가 지축을 울리며 첫 운행에 나선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국내 첫 철도인 경인철도가 18일 개통 120주년을 맞는다.

경인철도는 노량진∼제물포 33.2km 구간에 건설돼 개통 초기 증기기관차 4대와 객차 6량, 화차 28량으로 운행됐다.

요금은 1등 객차 1원50전, 2등 객차 80전, 3등 객차 40전 등으로 세분화됐다. 당시 쌀 1가마(80kg) 가격이 4원인 점을 고려하면 당시 1등실 요금은 지금으로 치면 약 11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평소 우마차로 12시간씩 걸리던 인천과 서울은 경인철도 개통 이후 1시간 30분 거리로 좁혀졌다.

경인철도는 교통과 물류 분야에서 획기적 변화를 이끌면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등 후속 철도망이 전국으로 뻗어가게 만든 기폭제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경인철도 인천역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경인철도는 한반도 수탈을 위한 일제 야욕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받아왔다.

인천시 역사자료관이 2015년 발간한 역사문화총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을 보면 일본은 인천항을 발판으로 한반도 각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열강의 각축 속에 1894년 '조일잠정 합동조관'에 따라 철도부설 사업권을 획득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반일여론이 끓어 올라 사업권은 1896년 미국인 모스에게 넘어갔지만,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 경인철도 건설사업도 차질을 빚게 됐다.

일본은 이를 놓치지 않고 '경인철도 인수조합'을 구성해 1897년 모스와 경인철도 양도계약을 체결한 뒤 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고 건설공사를 주도한 끝에 경인철도를 완공했다.

국내 첫 철도인 경인철도가 개통 120주년을 맞이해도 이와 관련한 행사가 전혀 없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1937년 지정된 '철도의 날'도 작년 5월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의결된 후에는 매년 9월 18일에서 6월 28일로 변경됐다.

정부는 작년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 자주성 회복 차원에서 철도의 날을 경인철도 개통일에서 우리나라 최초 철도국 창설일(1894년 6월 28일)로 교체했다.

경인철도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이기도 한 인천에는 경인철도와 관련한 조형물도 여럿 있다.

인천역 앞에는 '한국철도 탄생역'이라는 문구를 새긴 열차 모형의 석조 조형물이 있고, 1897년 1차 기공식이 열린 인천 우각현 자리 도원역 인근에는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비석'이 건립돼 있다.

아울러 동인천역 북광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증기기관차 모갈1호 모형을 포함한 기차 테마거리가 올해 3월 인천 동구청 주도로 조성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인천역 북광장 증기기관차 모형
[인천 동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inyo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